나의 봄날
나의 봄날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4.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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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어머, 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어느 시인의 시구 위에 내 감정을 얹는다. 달이 꽃으로 둔갑하니 더 근사하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흥분된다.

그는 벚꽃이 피었다고 들떠서 전화했다. 남녘에 살아 나에게 한발 앞서 꽃소식을 전해준다. 이제야 개나리가 피려고 볼이 잔뜩 불거져 있는데 거기는 이미 지고 난 뒤라고 한다. 노란색을 물리고 잎으로 푸르다고 했다. 그 목소리가 설렘으로 떨린다.

전화 한 통으로 내 근처에 서성이던 봄이 성큼 한 발짝을 들여놓는다. 이곳에는 무표정한 나무가 초록 눈을 달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마법사가 부리는 마술이 이보다 신비할까. 마른 나뭇가지에서 뾰조롬히 치켜뜨는 실눈과 마주친 순간 소름이 돋는다. 숨을 참고 몰래 지켜보다 들킨 사람처럼 속일 수 없이 딸꾹질이 난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환해진 거리는 생기가 돌고 들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농사를 서둔다. 밭을 가느라 요란한 기계소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는 농부들의 시동이 걸린다. 꽃구경을 기다려온 사람들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하마터면 지고 난 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소란해지는 계절이다.

나의 사계(四季)는 아들이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내 모든 것의 초점이 한 점에 박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다. 이제 나에게서 뻗은 가지의 수맥을 차단한다. 여기까지 오도록 나의 수액을 끊임없이 보내야만 했다. 아직도 공부 중이지만 앞으로는 제 힘으로 물을 올리고 잎을 키워나가야 하는 시기다. 잘 해내는지 지켜보아 주기만 하면 된다.

쉰의 중반에 와서야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에서 해방된다. 자식이 하나면서 무슨 엄살이냐 할 테지만 어깨에 짐이 왜 그리 버겁던지. 여러 명을 둔 부모들은 철인으로 인정한다. 뒷바라지를 끝내고 탈출을 선언한 마음이 깃털처럼 홀가분하다.

살아오는 동안 빈손이라 이제까지 해 놓은 게 없어 답답했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발자취에 어엿한 아들이 있다. 서른이 되기까지 기대의 노선에서 한 번도 탈선한 적이 없다. 보고 있기만 해도 흐뭇하여 언제나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와서야 힘듦도 기쁨일 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잘 견뎌낸 보상을 잊지 않는 시간이다. 참아내니 나에게도 꿈같은 봄이 와 있다. 마음의 나위가 내 안에 터를 잡자 움츠린 손을 벌려 기지개를 켜는 햇살이 눈 부시다. 일조량이 많고 자외선 지수가 높아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 해도 나는 이 볕이 좋다. 살이 그을려도 온종일 밖으로 쏘다니고 싶다. 얼마 만에 느슨해지는 나를 허락해 주는 봄인가.

곧 숨 고를 새 없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날 터이다. 뒤처질세라 꽃들이 한꺼번에 향기를 뿜어대는 통에 꽃 멀미로 울렁거려도 좋을 봄이다. 기침과 멀미로 통증이 심하여도 처방전이 따로 없이 몸살은 꽃이 지고 나면 가뿐해져서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봄앓이를 기꺼이 즐길 참이다.

그는 벚꽃에 대해 생중계를 하면서 고향의 아카시아 숲이 생각났다고 한다. 나도 그 숲이 떠올려졌다. 거기에 흐드러지게 피던 어린 시절의 봄날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좋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노란 꽃을 올리는 꽃다지. 아무리 작은 꽃에도 찾아드는 나비. 바삐 살아가던 걸음을 늦추고 봄이 펼치고 있는 풍경이 쏘옥 들어오는 지금, 꽃소식을 듣는 내내 설레는 바로 지금이 나의 봄날이다.

“우리 나이에 오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는 급류라네. 아름다운 추억의 봄 말고 현재의 봄날을 느껴보시구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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