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의 봄
대동강의 봄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4.0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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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어느 곳이나 봄의 모습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화려하고 다채롭지만, 그중에서도 강가의 봄 모습은 남다른 데가 있다. 봄꽃들이 강물과 어우러진 모습이 빼어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가의 봄을 대표하는 것이 있으니 버드나무가 그것이다.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은 한강에 비해 봄의 상륙이 늦겠지만, 그 다채로움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양각색의 봄꽃들과 어우러진 버드나무의 연록 빛이 대동강의 봄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고려(高麗)의 시인 김인존(仁存)은 대동강의 봄에 매료되어 그 흥취를 감출 수 없었다.

대동강(大同江)

雲卷長空水映天(운권장공수영천) 구름 걷힌 하늘이 물에 어리는데
大同樓上敞華筵(대동루상창화연) 대동강 누대 위서 보니, 온통 꽃 잔치네
淸和日色篩簾幕(화청일색사렴막) 화창한 햇빛 발 새로 비춰들고
㫊旎爐香泛管絃(의니로향범관현) 나부끼는 향연(香煙)은 풍악에 너울너울
一帶長江澄似鏡(일대장강징사경) 한 줄기 긴 가람 거울인양 맑고
兩行垂柳遠如煙(양행수류원여연) 언덕의 수양버들 가지는 연기처럼 흔들리네
行看乙密臺前景(행간을밀대전경) 을밀대 앞의 아름다운 경치 바라보자니
自驗千年表未然(자험천년표미연) 천년의 비경을 스스로 남겨 보려네

짙게 드리웠던 구름이 걷히고 나자, 끝없이 뻗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이 그대로 대동강 물속에 비친다. 여기만 놓고 보면 가을의 정경으로 보기 쉽지만, 다음 구(句)를 보면 완연한 봄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올라가 있는 강가의 누대에서 바라보니, 앞이 탁 트였는데 보이는 데마다 꽃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뜻하고 맑은 햇빛은 누대의 주렴 새로 스며들었다. 아직도 냉기가 살아 있어 피워 놓은 화롯불의 연기 냄새가 연주하는 노랫가락에 실려 흩어지는 모습 또한 봄의 정경이다. 한 줄기로 곧게 뻗어 흐르는 긴 강물은, 마치 거울처럼 맑다. 그리고 강의 양쪽 둑에 열 지어 있는 버드나무의 연록빛 가지들은 마치 연기인 양 하늘거린다.

봄의 흥취에 취한 시인은 누대를 내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을밀대까지 걸으며 봄의 향연에 직접 참여해 본다. 그러면서 천 년 동안 누구도 그려내지 못한 황홀한 봄 강의 모습을 스스로 징험해 보겠노라고 호언하는 호기도 부려 본다.

봄에는 들과 산을 걷는 것도 좋지만 강가를 따라 걷는 것도 비할 데 없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봄의 신비를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길게 드리운 버드나무 가지를 젖히며 걸으면서 봄꽃을 관상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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