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억 속으로
그 추억 속으로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4.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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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첫사랑을 가린다고 가려질까. 깨지기 쉬운 유리잔처럼 투영하게 다가온 사랑의 그림자는 풋풋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들썽들썽 달뜨게 하나보다. 여학생 조카의 일상 대부분은 외사랑 하는 연예인,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의 일상생활을 기록하고 따라하기 바쁘다. 핸드폰 메인 창에는 물론 스티커사진과 SNS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잠잘 때도 이어폰 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아이돌노래는 끝이 날줄 모른다.

나 역시 그 시절 봄바람을 타고 화사하게 피는 벚꽃처럼 사랑에 눈을 뜨던 날, 가슴속에 방이 하나 생겼다. 때문에 어머니의 립스틱을 몰래 바르기도 하고, 거울이 깨지도록 보고 또 보는 게 일상이었으니 조카 심정도 이해가 간다.

슬며시 공허한 마음이 엄습해 오면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본다. 마치 그리워서 생각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서 그리워지는 것처럼.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조금 가까이서 보면 더 우아하고, 한 발짝 다가서면 숨 막히던 사랑, 조카처럼 철부지시절 생인손 앓듯 외사랑 하던 가수. 머릿속은 그녀 상상으로 줄을 잇는다.

맥랑이 불기 시작하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털어내듯 펜클럽활동에 열을 올렸고, 경쟁하듯 음반 구하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방송에 그 가수가 출연하면 비디오테이프 탭에 화장지를 돌돌 말아 끼워 넣고, 반창고를 붙여 녹음할 수 있도록 해 무한 반복으로 보고 또 보고 닳도록 보았다.

나를 매료시킨 가수 김상희다. 독특한 음성과 발성테크닉, 무엇보다도 그녀의 탁월한 가창력과 학사가수라는 수식어가 나를 압도했다. 음반시장은 LP레코드판에서 카세트테이프로 그리고 소형카세트의 일종인 마이마이가 출시됐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와 조그마한 이어폰을 따라 흘러나오는 음향, 귀에 꽂으면 환상의 서라운드로 가슴을 후벼파며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이마이카세트는 소장하는 것 자체가 폼생폼사였다.

사람은 자기감정에 빠지면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 존재만 보인다고 한다. 느릿하면서 온몸을 휘감는 듯한 발라드풍 노래 `빨간 선인장'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잔잔한 저음에서 고음으로 치닫는 음성, 지금도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여전히 설레는 진행형 외사랑 이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을까? 어른들은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 정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란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존재라 했다. 때문에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인 거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사랑에 대한 연구를 무수히 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에로스·필리아·아가페를 논하며 파고들면 들수록 미로를 헤맨다고들 한다.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에로스(Eros) 사랑은 흥분과 좌절을 동반한다. 그 사랑은 꽃과 같아서 잠시 피었다가 곧 시들해져 버리는 사랑 즉 남녀 간의 육체적,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조건 없는 사랑,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아가페(agape)라면 거꾸로 자식이 부모에 대한 사랑 효 같은 사랑은 필리아(philia)라 학자들은 말한다. 학식과 지위와 명예와 상관없이 가슴 떨림으로 느끼는 사랑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 아니던가.

삶의 굴레가 두터워지면서 사랑이란 단어조차 밋밋하게 지내온 나날들. 열정도 없이 살기 바쁘다는 이유와 변명으로 살아온 시간. 아무리 곱씹어 봐도 빛나는 시간보다는 무의미한 시간이 수북이 쌓여 있는 지난날들이다. 어쩌다 세월이 그리도 많이 흘렀는지.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 삶은 일상과 현실 속에 흥정이라 했는데 젊은 날의 추억, 나의 최애곡인`빨간 선인장'이미 내 마음은 추억 속 음악다방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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