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가시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9.04.02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만인가. 불빛에 반짝이는 청어의 등살이 단단하다. 생을 보존하느라 날카로운 가시를 살 속에 감추고 옆으로 납작하게 누웠다. 한때는 몸값 비싼 어느 여인과 비교되는 영광을 누린 주걱턱이다. 돌출되어 있는 아래턱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스꽝스러워서 가시가 많아 주의해야 할 생선이란 걸 잊고 만만하게 여기게 된다. 담홍색에 다소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몸빛은 건강해 보이고 무엇보다 둥근 비늘이 잘 벗겨져 손질하기 좋다. 선호하는 생선 중 하나다.

날씨가 추워야 어물전 좌판에 어쩌다 올라온다. 어획량이 줄어 시장보다는 대형마트 어물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었다. 고등어나 꽁치에 비해 지방이 많아 감칠맛이 좋다. 눈에 띄면 망설이지 않고 산다. 어종으로 분류되는 것들의 숨겨 놓은 가시가 밥상 앞에서 나를 긴장시키지만, 청어는 더욱 신경 쓰이는 어종이다. 세심하게 살을 분리시켜도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리면 고통으로 인해 밥 먹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빠지거나 빼내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마저 흔들거린다.

명물기략(名物紀略)에는 값싸고 맛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고기라 하여 비유어(肥儒漁)로 표기했다는 청어를 구웠다. 접시 위에 놓인 몸을 해체시켰다. 커다란 알이 들어 있다. 구구대라 불어야 한다. 균형 잡힌 뼈의 무늬가 촘촘하다. 척추 뼈를 들어내도 잔뼈가 그대로 남는다. 느긋한 사람이면 뼈를 꼭꼭 씹어 먹겠지만 대부분 그러질 못하니 일일이 가시를 발라내야 한다. 식구들의 눈이 내게로 향한다. 밖에서도 상처받는 일이 많을 터인데 생선가시에 목을 내주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이 함께 밥을 먹을 때 직장에서 또는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다 보면 하루도 순탄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다. 가시를 세워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대화가 건조해지기 시작하고 상처가 나서 들어오면 감춰져 있던 내 안의 가시가 슬그머니 일어선다. 세상은 청어의 뱃속 가시보다 많은 가시밭길이다. 험한 길을 가자면 만만하게 보이면 우습게 본다. 그래선지 사람도 저마다 가시를 세운다.

가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가시라도 박히면 온몸의 신경 줄이 곤두선다. 생선가시를 발라내면서 피해가는 방법을 터득하지만 작정하고 가시를 세우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 내게도 여러 개의 가시는 있으나 숨기고 잘 보여주지 않는다. 허나 말의 가시를 시도 때도 없이 쏘는 사람을 만나면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가시를 세우고 경계한다. 살기 어렵다고 억세진 가시를 저리 세우는구나 하다가도 자꾸만 말의 가시가 독고마리로 달라붙어 상처가 되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상대와 똑같이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돌아보게 된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살처럼 가시를 날렸던 일이 떠올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청어가 놓인 접시가 비어간다. 저렇게 많은 가시를 속에 넣고 청어의 등살은 단단해졌나 보다. 갑자기 등이 가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