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빈틈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4.0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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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온기를 품은 봄 햇살이 문틈으로 쏟아진다. `틈이 있어야 햇살이 파고듭니다. 틈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입니다.'라고 했던 글귀가 생각난다. 그래 틈이 있어야 이 고운 햇살도 내게로 오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틈이 있어야 인간미가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신도 실수할 때가 있다는 농담도 있지 않은가.

오래전 일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녀와 친하게 된 계기는 날씨에 관한 한마디 말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란한 연말이었다. 그녀와 사무적인 통화 말미에 서로 덕담을 나누며 통화를 마치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연말이라 바쁘시죠?”한다. “쓸데없는 일로 바쁘죠 뭐.”했다. 또 그녀가 “이런 날은 분위기 좋은 데서 차나 마시면 좋은 날인데 차 한 잔 하자는 사람도 없네요. 그런데 눈은 왜 오고 지랄이래요?” 한다. 우리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부터 나도 그녀에게, 그녀도 나에게 무장해제다. 상상도 못했던 말이 터지면서 우리의 경계가 무너졌다. 나는 그녀가 보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썼다. 온 산야가 제각각의 색깔로 옷을 갈아입으며 찬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 늦가을.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문학회의 중에 작은 소리였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들리게 `아무 일 없어도 심란한데 비는 왜오고 지랄여.' 혼자 말을 했다. 옆에 있던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한다. 말을 붙이고 싶은데 영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아 거리를 두었는데 확 당긴단다. 그러면서 나하고 잘 지내고 싶다는 고백을 해왔다.

사람 마음은 똑같다. 다만, 표현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다. 조금은 상스러워 보일 수 있는 말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열게 했다. 나쁜 사람은 틈을 보면 나쁘게 이용하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인간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나도 남들에게 허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

2000년 전의 공자님 말씀을 지금도 받아 적는다. 그 말에 공감하고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며 그 훌륭함을 따라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몇백 년 전에 나와 상관없이 살다간 선배 문인. 철학자가 써 놓은 글을 보며 감동한다.

인연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온다. 어떤 말 한마디에서 작은 행동 하나에서 인연은 시작된다. 어찌 보면 좀 상스럽다 할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같으리라. 인격을 망가트리는 일 아니면 웃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빈틈을 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만큼 우리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거다. 겉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허점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틈이 있어야 햇살이 파고든다. 빈틈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라는 말, 곱씹어도 참 느긋하고 정답다. 빈 구석이 많을수록 단단하게 여미고 사는 법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여유가 있다. 비단 경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 정말 좋은 사람 그 사람을 만난 것이 내 인생에 참 고마운 일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어쩌자고 저런 사람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있으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면 외로운 것이다. 너그러운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파고들 틈이 있어 그런 것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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