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융합의 상징, 중원문화를 살리자
민족 융합의 상징, 중원문화를 살리자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03.31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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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북미관계 경색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1953년 분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남북화합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크다. 1953년 설치된 휴전선으로 가족은 생이별하였고, 어제까지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던 이웃사촌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서로 적대시하였다. 60여 년의 시간을 넘어서야 드디어 민족 화해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1,500여 년 전 고구려, 신라, 백제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그들도 분단시대 우리처럼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말 한마디 섞지 못하며 지냈을까? 이 질문의 힌트를 우리는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원문화권은 충북 북부지역인 충주, 제천, 단양, 음성, 괴산을 비롯하여 경기도 여주, 강원도 원주, 경상북도 영주, 안동, 문경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이 지역은 고구려, 신라,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었고, 치열한 영토쟁탈 전투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고구려 땅이었던 곳이 오늘은 신라 땅이 되기도 하였고, 어쩌면 내일은 백제의 땅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백성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문화를 만들며 살아갔을까? 비록 남아있는 문헌자료가 없어 명백한 답을 내릴 수는 없으나, 잠시 1,500년 전으로 돌아가 그들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국경도 없는 땅, 왕이라 불리는 이들은 머나먼 왕경에 있고, 허구한 날 전쟁을 해대며 땅의 주인이 바뀌었다 한다. 하지만, 여기가 고구려인들 신라인들 어떠할까? 그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땅을 일구고 삶을 영유하며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될 터인데…. 당시 이 땅의 백성의 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그래서 중원문화권의 백성은 고구려와도 백제와도 신라와도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특정 왕조에 얽매이지 않고 수천 년 전부터 뿌리박고 살아온 이 땅의 문화에 삼국의 문화를 더하며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충주 가금면 봉황리 산 중턱에 남아있다. 보물 제1401호로 지정된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한포천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바위에는 9구의 부처님이 조각되어 있다. 이 중 어떤 이는 고구려의 부처님을 닮았고 어떤 이의 신라의 부처님을 닮았다. 비록 서로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처럼 중원문화권은 민족 융합의 역사적 증거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8년 전국 7대 문화권의 하나로 설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국립 중원문화재연구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중원문화의 심장부인 충주에 국립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비록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외교 논리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남북 화해의 물결은 분명히 다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중원문화는 민족 화합과 융합의 역사적인 상징으로 그 빛을 바라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될 국립충주박물관 건립이 순조롭게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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