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을 부르는 초령목을 찾아서
신령을 부르는 초령목을 찾아서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19.03.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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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겨울이 지나면서 가장 먼저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작물이 마늘이다. 비닐 한쪽을 걷어 비료를 주고 다시 비닐을 씌우고 하나하나 구멍을 뚫어 마늘 싹을 비닐 밖으로 꺼내 놓아야 한다. 2~3일 작정하고 비닐을 걷고 비료를 뿌리는데 멀리 제주도에 초령목 꽃이 피었으니 주말에 보러 가자는 연락이 온다. 게다가 참죽나무 묘목 캐러 가자고 시골친구의 연락도 온다.

어느 것을 포기해야 할까? 그래도 할 일은 해야겠다. 정신없이 참죽나무 묘목부터 수십 그루 캐어 가식을 해놓고 마늘 밭일을 계속한다. 초령목 꽃이 기다리니 가지 않을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도를 향했다. 2박 3일이지만 저녁에 가서 아침에 떠나니 실질적으로 식물탐사는 하루뿐. 게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심란하기만 하다.

초령목! 너 무엇이기에 나를 설레게 하고 심란하게 하는 것이냐? 초령목은 목련과의 식물이다. 목련과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백목련, 일본목련, 튤립나무, 태산목, 자목련, 자주 목련, 별 목련 등이 관상용이나 목재용으로 길러지고 있으며 목련과 함박꽃나무 초령목 등이 자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목련과 식물은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성 식물이다. 그런데 초령목은 유일하게 겨울에도 잎이 달려 있는 상록성인 식물인 점이 특징이다. 상록성이라는 것은 열대나 아열대 식물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살기 쉽지 않다. 흑산도에 자라던 초령목은 일본사람들이 심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주도 계곡에서 자생하는 초령목이 발견돼 흑산도 고목도 자생한 것으로 믿게 됐는데 지금은 죽었다니 아쉽다. 1976년 제주도에서 발견된 자생지는 훼손됐고 2002년 발견된 자생목은 태풍에 넘어져 고사했다고 하니 자생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한라산 계곡에서 수십 그루가 발견되어 우리나라에도 초령목이 자생함을 확인하게 됐다. 초령목으로서는 최북단에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됐다.

초령목(招靈木)은 가지를 부처 앞에 꽂는 풍습이 있어 신을 부르는 나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일본에서 이 나무의 가지를 신전에 놓아 신령(神靈)을 불러들이는 의식에 이용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귀신나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령을 부르는 나무를 잘못 번역한 탓인 것 같다. 초령목은 다른 목련에 비해 크고 곧게 자라는데 꽃이 다른 목련에 비해 아주 작다.

초령목 꽃을 보리라는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제주도. 예년에 비해 따뜻한 날씨 탓에 초령목꽃이 2주 정도 앞당겨 피고 일찍 졌다. 처음 보는 통탈목, 페리온나무, 후추 등 열매 이런 것들도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비도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하고 식물 탐사를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못내 초령목 꽃이 아쉽다. 결국 떨어진 꽃잎이라도 보고자 어느 농원을 찾았다. 고목이긴 하지만 다른 자생목보다 넓게 퍼져 자라 잎과 꽃을 관찰하기 쉽단다. 꽃이 달렸던 자리만 찍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눈 좋은 S 박사님. 늦둥이 꽃 몇 송이를 찾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너라도 볼 수 있었으니.

오늘은 늦둥이 몇 송이에 만족하지만 언젠가 만개한 너의 꽃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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