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우다
나를 세우다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3.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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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요즘 들어 안과 밖의 나는 언쟁이 깊다. 부딪히며 타협하는 과정이 거듭 반복되는 중이다. 이런 시간의 유속 속에서 갈 길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하는 나 자신이 보인다. 살아가는데 낮과 밤의 변화가 필요하듯 그것도 겪어가야 할 인생의 한 페이지가 아닐까 싶다. 웃기도 하며 울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후에 찾아오는 카타르시스이다.

청정한 시야로 바라보니 세상은 다양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모든 자연과 사물 속에서도 의미가 스며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터득한 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흐트러졌던 마음을 세우고 현실 속으로 걸어간다. 주어진 삶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위로가 크다.

TV에서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가 간간이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 폭넓은 가치관과 의도하는 바를 내 것으로 끌어내기에 충분해서 좋다.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큰 울림이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세상에 끌어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언가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약한 것에서 강함을 보여주고 아픈 것에서 치유를 끌어내는 효과적인 시간이다.

얼마 전 `그냥 놀면 뭐해'라는 제목을 다룬 다큐가 방영되었다. 바닷가에 사는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노구의 몸을 이끌면서 바다 일과 농사일을 해가는 모습이야말로 귀감이었다. 어찌 보면 세상에 그분들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대하듯 친근한 풍경이었다. 누구나 노쇠하면 하던 일에서 물러나기 마련인데 그분들은 그렇지 않았다. 말 그대로 늙었다고 놀면 뭐하냐는 노인의 낮은 소리가 온 세상에 크게 퍼지는 물결 같았다.

시류에 따라 나이가 들면 은퇴라는 말이 따른다. 그분들은 그 말과 거리가 먼 삶이었다. TV시청에 빠져든 이유는 현재의 내 삶을 들여다볼 자연스러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기는 드물 것이다. 그 부분에서 절실할 만큼 벗어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내게도 있음을 감추지 못해서다. 흔한 듯해도 영상 속 주인공들의 삶은 특별한 파장을 몰아다 주었다. 건강한 정신의 본보기였다. 비춰지는 삶을 통해 지금 내가 다시 일어나야 하는 외침을 듣게 된 셈이다.

나는 아직도 덜 자란 나무였다. 비바람에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한 지반도 갖지 못했다. 그러기에 조그만 일에도 낙심하며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심신의 상태가 약한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아무리 배우고 습득해온 것이 있다 해도 삶 속에 반영하며 돌아보는 기회가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때때로 연이어지는 이 미숙함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산다는 것은 한순간 한순간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한 생산적인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정신을 활용하는 방법이든 육체적인 활동이든 살아있는 순간까지 분량만큼 감당해가는 일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도 따뜻한 감정이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젊고 건강해야만 의미 있는 삶이 아니었다. 세월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귀한 물건처럼 내 눈에는 그분의 인생이 값지게 보였다. 오늘도 나를 세우고 일터로 향한다. `놀면 뭐혀'라고 웃으며 얘기하는 TV 속 팔순의 노인을 뒤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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