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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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03.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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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리모델링하기로 결정을 했다. 남편은 오래된 아파트에 돈 들이지 말고 차라리 새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했지만, 나는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깨끗하고 편리하게 고쳐서 십 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사와 리모델링을 두고 가족회의를 한 결과 남편이 생각을 바꿔주었다. `집 안에 주로 머무는 사람은 엄마니까 엄마한테 맞추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딸아이의 말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큰딸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애들 교육을 위해서 도시로 나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이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지, 자식 교육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지낼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그냥 이 집이 좋았다. 세 아이가 차례로 성장하는 동안 소소한 일들이 고스란히 쌓이고, 구석구석 어디에서도 추억이 한 가지쯤 튀어나오는 이 집을 떠나고 싶지가 않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준 아이들이, 이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여기로 모여들고…. 그렇게 삼대가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그런 설렘도 잠시, 본격적으로 짐 정리를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십오 년을 산 아파트는 여기저기 망가져 무엇 하나 번듯한 게 없다. 원목마루가 일어나서 맨발에 가시가 박히는 일은 허다하고, 벽지며 수도꼭지, 가구들까지 가까스로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미 수명을 다한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게으르고 잘 버리지 못하는 데다 물건 욕심까지 많은 내 성향이었다. 케케묵은 짐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다 보니 족히 태산 하나를 만들어도 될 정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물건들도 꽤 많다. 혹시나 쓸까 꾸역꾸역 쟁여 놓았던 그릇들이며 읽어야지 눈독만 들이던 책들, 언젠가 입을 것 같아 옷장 가득 모셔둔 옷들…. 온통 물건들로 점령당한 느낌이다. 눈치만 보며 앉아있는 쌍둥이 찻잔세트, 주인이 살빼기만 기다리다 같이 늙어버린 정장과도 이번만큼은 이별할 생각이다. 나눌 수 있는 것은 필요한 지인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려야지. 앞으로 물건을 살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리라.

우선 텔레비전 채널목록에서 홈쇼핑 채널을 지웠다. 이상하게도, 홈쇼핑방송을 보다 보면 꼭 필요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살 거라면 좋은 조건일 때 구매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팔랑 귀 아니랄까 봐 상술에 넘어가 주문했던 물건들이 지금 저렇게 태산을 이루고 만 것이다. 견물생심에 대한 원천봉쇄가 필요한 이유이다.

집만큼이나 정신없이 살아온 중년의 삶 속을 들여다본다. 이 역시 오랫동안 쌓여온 생각과 관계들로 포화상태인 것 같다. 버리지 못한 욕망과 미련이 켜켜이 내장지방처럼 껴 있다. 이참에 내 인생도 리모델링할까 보다. 정리의 기본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 용서할 수 없었던 인연도, 사무치게 서운했던 기억도, 애써 감춘 아쉬움조차 미련 두지 말고 털어버리자. 강산이 변하도록 묵혀둔 감정이라면 버려도 상관없을 `짐'인 것이다.

집과 마음이 새롭게 바뀌면, 나도 월든 호숫가의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 수 있을까. 자발적 빈곤'과 `간소화'의 삶,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일에 집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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