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답이다
특검이 답이다
  • 권혁두 국장
  • 승인 2019.03.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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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엊그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해외로 나가려다 공항에서 제지당했다. 그는 검사 시절 건설업자의 별장에 초대돼 성폭행을 하고 부적절한 성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등장하거나 관련된 동영상들은 한결같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난잡하고 엽기적이라고 한다.

지난 2013년 경찰은 144명의 관련자와 동영상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성관계가 담긴 동영상 속 인물은 육안 확인으로도 김 전 차관이 분명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넉 달 만에 동영상의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할 수 없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수사하는 동안 김 전 차관은 딱 한 번만 불러 조사했다. 그 소환조사도 맥빠진 문답식으로 진행됐다. 이듬해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고소하자 앞선 조사에서 무혐의를 결정한 검사에게 사건을 배정했다. 피해자들이 김 전 차관과의 대질심문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검찰에 불려간 피해자들은 검사에게 “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느냐”는 훈계와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경찰 수사팀 일부가 이유없이 교체되는 등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의 유무죄를 밝혀내 법정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철저하게 밝혀야 할 것은 경찰이 유죄를 확신해 송치한 사건, 피해 당사자들이 고소한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로 종결되기까지의 석연찮은 과정이다. 장자연 사건과 버닝썬 사건도 마찬가지다. 범죄 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범법자와 범죄현장에 울타리를 쳐 준 타락한 권력과 부패한 담합을 밝혀내는 것이다.

진상조사가 연장되고 재수사가 결정됐지만 진실로 향할 길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김학의 사건을 수치로 받아들여야 할 검찰에서 치욕을 씻어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재수사 여론이 빗발쳤지만 미적거리다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조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야 진상조사위 활동기한 연장과 재수사를 결정했다.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조치도 그가 해외로 빠져나가려다 발각된 다음에야 취해졌다. 재수사를 검찰에 맡겨서 제대로 되겠느냐는 불신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문제의 별장 파티에는 김 전 차관 외에도 수십명의 유력자가 참석했다고 한다.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교수, 기업인에서 전현직 장성들까지 거론된다. 사건의 장본인인 김 전 차관이 버젓이 해외 나들이를 시도하는 지금의 상황은 판도라의 상자를 사수해온 이들의 파워가 만만찮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진실을 감추기 위한 저항을 할 것이다. 전방위 외압을 떨쳐내고 진실 규명에 오로지할 구원투수의 등판이 절실하다.

현재로서는 특별검사제 도입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특검을 임명해야 할 국회에서는 이 사건이 정쟁의 도구가 돼버렸다. 특히 한국당이 특검에 소극적이다. 나경원 대표는 “드루킹 사건, 김태우 사건, 신재민 사건, 손혜원 사건, 이주민, 황운하, 서영교 그리고 문다혜 사건에 이르기까지 함께 특검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적 퇴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밝혀내야 할 진실을 당리에 결부시키는 행위는 공당답지 못하다. 많은 국민들은 지금 현직 대통령을 심판하고 준엄하게 책임을 물었던 촛불정신의 퇴색을 걱정하고 있다.

한 검사의 일탈조차도 규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법 시스템 앞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던 촛불의 구호는 초췌해졌다. 김학의 사건과 더불어 장자연, 버닝썬 사건은 권력을 매개로 한 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과제도 수행하지 못하면서 선진국, 선진시민을 자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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