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승
윤기승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9.03.2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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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를 말하다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사진가 윤기승. 그는 시작도, 끝도 모른 채 다만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의 끝자락을 잡고 씨름하던 작업, 그 눈물 나는 외로운 사진작업에서 울고 싶도록 아름다운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2015년 5월 9일 강원도 홍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양수리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고향에 갈 때마다 거쳐 간 양수리가 아름다워 20여 년 동안 찍어오면서 마음에 담아온 느낌이 수십 수백 배 우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양수리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대지가 훈훈해지는 아지랑이를 등에 업고 나섰지만, 양수리를 필름에 담기는 처음엔 다소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어디를 어떻게 찍을 것인지 막막했다. 자연이 베풀어준 산과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경(山 景)을 이룬 양수리를 그저 돌아다니기에도 하루가 바빴다.

처음 1년을 허송세월하듯 양수리 감상으로 보낸 뒤 아주 조금만큼씩 감(感)이 왔다고 한다. 잘 틀은 새 솜을 풀어놓은 듯한 남한강. 북한강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며 흐르는 물안개. 두 물(남한강과 북한강)이 머리를 맞대는 곳이라 하여 부르는 두물머리에서 운길산과 중미산까지 샅샅이 뒤지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진이 많아지자 그는 사진찍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엄청난 대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사각의 공간 안에 담아내기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배우게 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하고, 시인은 시로 말하며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합니다. 세상을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닌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함을 알았어요.”

그는 사진가 유진 스미스의 사진 중 `밝은 숲 속에 꼬마가 걸어 들어가는'장면을 보고 풍경 사진도 영감(靈感)이 살아있어야 함을 알았고 다큐는 좀 더 세밀함이 스며 있어야 함도 깨달았다.

그는 서울에서 강릉을 이어주는 도로에 자리 잡고 있는 양수리에 내려오는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예부터 물 좋고 산세가 수려하여 큰 인물이 많이 나왔다는 양수리. `오성과 한음'이야기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 유학자 화서 이항로, 항일독립투사이며 정치가였던 몽양 여운형이 대표적 인물이었다.

`서울의 아침 양수리. 양수리에 해가 뜨면 수도 서울이 밝아진다.'는 말처럼 그는 운길산에 올라 양수리를 내려다보면서 양수리의 천태만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필름에 담을 것을 다짐했다. 산과 물, 논과 밭이 호수와 어우러져 사계절 모두가 아름다운 양수리. 봄이 오면 산벚꽃, 진달래, 할미꽃이, 연꽃이 호수 위에 주단을 깔고 피어난 연꽃 무리가 노래하는 여름, 가을 중미산 아래 맑은 물과 어우러진 단풍잎과 갈대, 사과 배 밤이,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원앙새와 이른 새벽 어디가 뭍이고 어디가 물인지 모를 오리무중의 우윳빛 물안개 속에서 무리지어 나르는 철새들이 그의 카메라에 차곡차곡 찍혔다. 마지막 3년간엔 매일매일 살다시피 양수리 사진작업을 한 그는 20여 년 동안의 사진들을 간추려 세상에 보여주었다. `아리수가 머무는 곳 양수리'고구려 광개토대왕 비문에 쓰인 그대로 이름 지어 사진집을 출간한 것이다.

그는 사진집 3권을 더 출간했다. 2003년 `아름다운 한강.' 2004년 `살아 숨 쉬는 광릉숲,' 2005년 `오백 년의 숨결 살아 숨 쉬는 광릉숲'이다. 어릴 적의 그림을 좋아한 것이 청년이 되면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는 그는 사진 인생 40년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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