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어떤 여행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3.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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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어지럼증이 심하여 용하다는 이비인후과를 이곳저곳 다녀 보아도 증후를 찾아내지 못하여 서울 삼성병원을 다녀왔다. 머리를 숙이거나 누웠다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돌면서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고 어질어질하다. 말하자면 돌아누울 때, 올려다볼 때, 머리 위치를 변화시킬 때 나타나는 묘한 증상이다. 약간의 두통이 따르기도 하는데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고 흔들리며 기우는 것도 같다.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 솜 위를 걷는 듯도 했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한참을 기다렸다 움직여야 했다. 누구는 이석증이라고도 하고 달팽이관에서 중심을 못 잡아 그렇다고도 했다.

원인 불명의 판정을 받고 삼성병원을 다녀오는 중에 아들 내외가 이번 봄에는 가족여행을 제주로 잡아놨다고 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국내 여행지로 최고로 꼽는다.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바다와 해변과 기암괴석, 오름의 기생화산과 곶자왈 숲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대부분 여행자들에게 오기를 잘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준다.

제주도가 아무리 국내 최고의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어지럼증이다. 내 어지럼은 차를 타면 영락없이 차멀미를 한다는 것이다. 차멀미는 자가운전을 하면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통례인데 나는 내가 손수 운전을 해도 멀미가 난다. 정확히 말해서 어지럽다는 것이다. 운전이란 앞만 똑바로 보는 것이 아니다. 앞뒤 좌우를 살펴야 하는데 백미러나 룸미러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더욱이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야 하는데 이를 감당해낼지 겁부터 덜컥 나,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3박 4일의 이번 제주도 여행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내 생일이고, 둘째는 아이들 결혼기념일이 끼어 있단다. 내 생일 때문이라면 어지럼증을 핑계 삼아 거절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버지로서 자식의 결혼기념일은 도저히 취소시킬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덧붙여 말하기를 본래는 해외로 잡아놨다가 이제 14개월이 된 딸아이가 너무 어려 국내로 여행지를 바꿨다는 데는 할 말이 없었지만 내심 속으로는 어지럼증으로 큰 병원에 갔다가 오면서 웬 뚱딴지냐 싶기도 했다. 여불비하고 우선 효도하고자 한다는 뜻에 감동하여 거절하지 못하였다.

몇 날 며칠 멀미에 대한 두려움을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어지럼증은 더 심했다. 어느 듯 출발일이 다가왔다. 하루 전부터 항구토 및 항현훈 작용을 나타내어 멀미로 인한 구역, 구토 및 어지럼증을 예방하는 키미테를 붙이고 당일 날은 멀미약을 두 병이나 복용했다. 비행기는 이, 착륙 시에 제일 조심하라고 했다. 머리를 똑바로 하고 마치 명상하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키미테와 멀미약의 효험인지 거짓말처럼 아무 탈 없이 이륙했고 무사히 착륙했다. 기내에서는 귀여운 손녀가 “하비. 하비” 불러도 가급적 대답만 해줄 뿐 머리와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제주도의 모습을 많이 지닌 곳이 바로 우도다. 우도는 제주도의 또 다른 속살이라고 불릴 만큼 제주도를 가장 많이 닮았다. 그 우도가 이번 여행의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이었다. 우도는 배로 이동해야 했다. 배는 멀미하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비행기를 탈 때처럼 명상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15분가량 타는 배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배 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 탓인가? 아무 탈도 나지 않았다.

곰곰 생각해 보았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멀미가 신체적 결함이 아니라 정신적 불안정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원인불명의 어지럼증 또한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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