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찮은 별명
가당찮은 별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3.17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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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소설 `위대한 개츠비'(스콧 피츠제럴드)는 첫사랑을 되찾으려는 청년갑부 개츠비의 고군분투를 얼개로 삼는다. 가난한 집 출신인 그는 상류층 딸인 데이지와 사랑을 나눴지만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쓰디쓴 결별을 하게 된다. 5년 후 밀주업으로 거부가 된 개츠비는 이제는 유부녀가 된 데이지를 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 광기 수준의 열정을 쏟아붓는다. 그녀의 집이 만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이는 곳에 대저택을 구입하고 연일 도시(뉴욕)가 들썩일 정도의 초호화 파티를 연다.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파티에 대한 호기심과 유혹을 떨치지 못해 언젠가는 파티장을 찾을 그녀와의 조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마침내 개츠비는 데이지의 사촌까지 동원해 그녀를 파티에 끌어들이고 극적인 재회를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개츠비가 거둔 이 필생의 성취는 비극의 출발점에 불과했다.

많은 독자들이 책의 제목에 의문을 품는다. 개츠비에게 왜 `위대한'이라는 수식을 붙였느냐는 것이다. 작가도 생전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은 터라 읽는 이들마다 제각각의 해석이 나온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맴버인 승리의 닉네임이 `위대한 승츠비'라고 한다. 소설의 제목에서 따온 모양이다. 여기에도 같은 의문이 따라붙는다. 왜 승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사를 부여받았을까. 사업가로 변신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벼락부자가 돼 도시의 밤을 휘어잡은 개츠비의 성공에 비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승리는 `위대한 개츠비'의 결말을 알고는 있었을까.

개츠비는 데이지와 밀당을 벌이다 얼마 후 총에 맞아 죽는다. 총을 쏜 사람은 데이지가 몰던 차에 치여 숨진 여인의 남편이다. 개츠비는 질투에 눈이 먼 데이지의 남편에 의해 뺑소니범으로 몰렸고, 데이지 대신 복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찾는 이가 없어 적막하고 스산했다. 밤마다 그의 파티에 찾아와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환락을 즐겼던 도시의 사교계 인사들 중 장례식에 얼굴을 비친 사람은 없었다. 개츠비에게 목숨을 빚진 데이지조차도 그의 죽음을 차갑게 외면했다.

승리의 현재는 전적으로 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대부분 소녀 팬들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십만원 짜리 티켓까지도 마다않는 그들의 열정적 호응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 한류열풍을 견인한 그의 재능과 노력은 인정받을 만 하다. 그러나 그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 어린 팬들의 헌신에 가까운 무한 애정이었다. 보답으로 도덕군자가 돼 사회적 귀감이 돼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불의와 선을 긋는 최소한의 직업윤리, 소비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상도덕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 의혹을 받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가 지인들과 공유한 카톡방에서 오간 언어들은 필설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로 저속하다. 단톡방에서 여성은 오직 성적 욕구 해소에 필요한 노리개로 취급됐다. 그에게 팬들에 대해 한줌의 존중심이라도 있었다면 즉각 출입을 끊었어야 할 천박한 공간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개츠비의 위대함은 그의 쓸쓸한 장례식에서 잠깐 드러난다. 그가 살아서 부를 과시할 때 주변에서 아부하고 환호했던 무리들은 그가 죽자마자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그 속물들과 차별되는 상대적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개츠비는 욕망을 향해 무한 질주하다 파국을 맞은 부나방 같은 존재였지만, 자신을 빼놓고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숱한 배신을 당했다.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도 단 한 여성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포기하지 않은, 어찌 보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생애 내내 무모했지만 그를 차용한 누구처럼 싸구려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위대한 승츠비'는 참으로 가당찮은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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