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할머니
정선 할머니
  • 최승옥 수필가
  • 승인 2019.03.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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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승옥 수필가
최승옥 수필가

 

친정 언니가 입원했다. 2년 전 발목 골절로 핀을 박는 수술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언니의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옆 환자의 신음이 애잔하게 들린다. 얼마나 진통이 크면 앓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잠을 못 이루는 고통 속에 신음만 들어도 아픔 정도가 가늠된다. 엊저녁에도 열이 내렸다 오르기를 반복했다는데 한숨도 못 잔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유명을 달리하실 것 같다.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 드리려 고향은 어디며 자식은 몇이나 뒀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할머니는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자식은 5남매란다. 할머니께 정선에서 왔으니 노래 좀 불러보라고 졸랐다. 병실 환자들까지 합세해 힘찬 박수까지 보내니 한참을 망설이다 정선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청녀를 의지하여/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노래를 읊조리던 할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훔친다. 그리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린다. 노래하는데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며 할머니 스스로 서글픔을 달랜다. 손뼉을 쳐주던 이들 모두 할머니의 심경을 읽은 듯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77세의 할머니는 37세에 혼자되셨다고 했다. 5남매의 어미로서 자식들 배곯을까 봐 허리띠 졸라매며 안 해 본 일이 없단다. 남의 집 품팔이부터 보따리장사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 덕에 자식들을 가르치고 건강하게 키웠다.

병실은 할머니 인생사를 듣느라 조용했다. 입술에 침을 바르며 이야기가 이어질 때 할머니의 큰아들이 왔다. 조금 전까지 기운이 없어 조근조근 말하던 할머니의 목청이 갑자기 우렁차졌다. 언제 아팠나 싶을 만큼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간병인한테만 의지하지 말고 알아서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하라며 된소리를 한다.

일찍 홀로된 어르신들의 특징이 그저 자나깨나 아들만 옆에 있어 주면 그보다 좋은 약이 없다. 그만큼 만병통치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에게 응석 부리고 늘 옆에 있어 주길 소원했을 것 같다.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의 절반만 해도 효자다. 자식은 나름대로 직장에 충실해야 하니 속으로 모친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 어미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다면 내 아들은 어떻게 행동을 할지 잠시 생각해본다. 어머니 시대는 그래도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프면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모시려 한다.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최소한 부모와 자식 간의 의무는 지켜야 한다고 본다. 아들이 돌아가고 나자 할머니는 말없이 한쪽만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을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 며칠 후 풍문에 그 할머니는 아들이 요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 자랑이었던 아들은 할머니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정선아리랑의 한을 알기나 할까. 아마도 아들은 평생을 어머니가 왜 그토록 정선아리랑을 부르는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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