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화의 문학 칼럼
한채화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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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주론(樂酒論)
어린 시절 나는 아주 가끔 별 총총한 밤에 영사기 한 대 믿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 속에 있었다. 군청 문화공보부라는 곳에서 이른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골 사람들을 위한 영화상영 때문인데 나에게는 낯선 문화 체험이었고, 그래서 늘 신이 났다.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일찌감치 앞자리를 차지하고는 오줌이 마려워도 참고 때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영화라는 게 대동소이해서 늘 반공을 강화하는 내용이었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편 가르기에 길들여졌다. 좋은 우리 편, 나쁜 저 편이어서 우리 편이 죽으면 안타까워했고 저 편이 죽을 때에는 소리를 지르며 통쾌해했다. 하물며 악역을 맡은 배우는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우리로부터 많은 욕을 얻어먹었다. 철부지들이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기엔 너무 어렸다.

나는 요즘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경계가 무너진 탓인지 가상의 공간과 현실을 혼동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보고들은 60세와 50세도 안 된 사람의 주먹다짐 사건이 그러하다. 그들은 함께 택시 운전을 하는 동료로서 번을 서지 않는 날에 집 앞 공원 벤치에서 술을 마셨다. 거기에서 그쳤으면 낯설지 않은 그림이며, 친숙한 이웃의 모습이 아닌가. 문제는 검색어 순위 톱을 달리는 박태환이었다. 박지성, 박세리, 박찬호를 들먹이며 한국의 위상을 박씨가 높인다고 연세가 좀 더 드신, 성이 박씨인 분이 우쭐한 모양이다. 이에 왜 박씨만 있느냐, 우리 시대 박치기 영웅은 김씨이고, 사라예보의 탁구 영웅은 이씨 아니냐며 따지고 들었으며, 결국 주먹다짐까지 간 모양이다. 물론 이 싸움에는 술이 기름이 되어 불을 키운 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마시는 술은 여러 가지의 순기능이 있으면서 동시에 악기능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버지나울프의 생애를 이야기하지만 친밀감을 과장하거나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뛰어내리고 달려가고 울기도 한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에 대한 혼동의 연속인 셈이며, 끝은 변기통을 붙들고 끝없이 자책하는 일이 된다.

보들레르는 모든 예술가들은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고, 고은 시인은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단다. 시인과 술 하면 너무 자연스러워 많은 시인들이 어쩌면 지금도 물로 된 불에 화상을 입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나 적지 않은 시인들이 술로 인해 제 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 과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디오니소스형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한 유형이며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이라고 하니 술을 마시면 잠자는 감성을 자극하는가 보다. 나는 조지훈 시인이 분류한 등급으로 치자면 민주(憫酒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도 내지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정도로 하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술공부를 더하여 등급을 올리고 싶은 마음도 없으려니와 술을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지도 않는다. 다만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유유자적하는 낙주(樂酒) 정도이면 좋겠다. 술이 싸움이 되지 않는 정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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