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발'이
`발발'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3.1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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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그 발바리가 아니다. 혀를 길게 내밀고 동네 꼬마 녀석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붙임성 있게 굴던 귀여운 잡종의 강아지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여학교 근처를 배회하다 여학생의 모습이 보이면 갑자기 바바리를 활짝 열어젖히던 관음증의 남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발발'이라는 석인상을 말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간 길에 지인과 함께 국립 박물관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마침 카자흐스탄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보았던 석인상의 모습이 며칠을 두고 잊히질 않았다.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 그 모습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의미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죽어서도 살아생전의 부귀영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워진 석인상. 카자흐스탄의 석인상은 죽은 주인을 모시기 위해 살해된 사람을 의미한다고 했다. 물론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로 보기도 하고 고인이 머무는 무덤 주위에 말을 매어 놓는 기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는 해석도 덧붙여 놓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전자의 해석에 마음이 더 쏠렸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후였지 싶다. 우리 마을에는 삼신댕이라는 제법 넓고 큰 묘지가 있었다. 그곳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던 곳이었다. 여름에는 주변에 큰 나무가 에둘러 있어 시원한 그늘 때문에 올라갔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에는 넓고 큰 무덤 위로 비닐포대 썰매를 타고 노느라 올라가곤 했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또렷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무덤 앞에도 두 개의 석인상이 있었던 것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오랜 세월 탓에 석인상에는 이끼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석인상에는 작은 도마뱀이 기어올라 가곤해 그것을 잡으러 다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아마도 잔디가 고르게 올라왔던 것을 보면 마을에서 관리했던 듯하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우리 마을의 석인상은 근엄하고 크기도 컸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의 석인상은 크기도 작거니와 모습도 순박해 보였다. 두 개의 석인상은 남자와 여자인 듯, 남자 `발발'은 주인에게 몸을 조아리는 듯 양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긴장한 모습이다. 그에 반해 여자 `발발'은 남자 석인상과는 다르게 입술도 살며시 벌어진 모습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도 살짝 옆으로 돌리는 듯, 사랑에 빠진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한 쌍의 남녀처럼 보이는 `발발'의 앞에서 붙박이를 했다. 정말 주인을 위해 죽어 간 사람의 영혼일까. 아니면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일까. 이상하게 그 모습이 처량해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의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카자흐스탄의 자유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나 보다. 전시회장 정 중앙, 황금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옷을 입고 모자와 옷, 그리고 신발까지 반짝이는 황금인간이 서 있다. 어느 나라이건 기득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죽어 무덤에 들어가서도 그 영광을 잃기 싫어하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음이 모든 인간에게 내리는 하늘의 평등한 판결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발발'이가 되어 그들의 죽음잔치에 희생양이 되어 제단에 올려졌을까. `황금인간'과 `발발'. 무엇이 사람의 가치를 이리도 천양지간으로 갈라놓았단 말인가. 다시금 삶과 죽음에 대해 진중히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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