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판치는 탈진실의 시대
가짜뉴스가 판치는 탈진실의 시대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03.1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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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사건과 관련해 광주 법정에 섰다. 광주사태가 벌어진 지 39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역사의 판결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5·18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사건이다. 군부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그 누구도 용서를 구하고 사죄를 청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껏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것은 당시 책임자들이 회피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광주행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광주로 출발하기 전 보수성향 단체들은 연희동 자택 앞에서 `전두환 대통령 광주재판 결사반대' 집회를 열고 경찰과 대치했고, 취재진과의 몸싸움도 불사했다. 들고 나온 플래카드는 사실을 거부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공(公)과 사(私)가 뒤죽박죽인 현장, `광주'가 상징하고 있는 자명한 역사의 진실에도 시간을 과거로 돌려놓은 듯한 모습은 씁쓸한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 남북문제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시대변화를 극렬하게 거부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가짜뉴스로 도배된 플래카드를 보며 동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향점이 다른 세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친일청산을 부르짖으면서도 해방 70여 년이 지나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나, 정치적 셈법에 쓸려 다니느라 부끄러운 현대사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이나, 진실이 유예되어 벌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사이, 이념의 틈새에서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처럼 각색되고 진실인 것처럼 꾸며져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간다.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사회가 극으로 치달으면서 가짜뉴스는 더 활개를 친다. 유튜브를 타고 가짜뉴스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기승을 부린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 양상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 소셜 네트워크로 거리와 시간의 장벽 없이 세계와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의 사이넌 아랄 연구팀은 가짜 뉴스가 퍼지는 속도가 진실보다 6배나 빠르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다. 인간의 호기심이 가짜뉴스를 키운다는 연구보고서는 경각심마저 갖게 한다.

이는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가짜뉴스가 발목을 잡는다. 텍스트의 함정은 SNS타고 넘어와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혼선을 준다. 가짜가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진실도 힘을 잃는 그런 시간을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것이다.

인문학자 유발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란 책에서 탈진실의 시대를 이렇게 경고한다. “어떤 가짜뉴스는 영원히 남는다. 호모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데서 나온다”면서 “사람들을 단결시키는데 거짓이야기는 진실보다 본질적인 이점이 있다. 인간은 진실보다는 힘을 선호한다”는 말로 가짜뉴스의 힘을 전하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에서 요구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언제라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다른 길을 시도해볼 자유”와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의견을 의심하고 다시 검증하기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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