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매화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3.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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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매화는 봄의 꽃인가? 아니면 겨울의 꽃인가? 가는 겨울과 오는 봄에 꽃을 피우므로 어느 계절로 특정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매화의 절조를 높이 사는 사람이라면 매화를 겨울꽃이라 할 것이고, 매화의 가녀림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봄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매화의 철에 대한 논란은 기실 부질없는 일이다. 매화의 고혹적인 자태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치유해 주는 것이 본질 아니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 매화의 고혹적 매력을 뒷받침하는 눈과 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송(宋)의 시인 진여의(陳與義)는 눈과 달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매화(梅花)

客行滿山雪(객행만산설) 나그네 온 산의 눈을 밟고 가는데
香處是梅花(향처시매화) 향기 나는 곳이 곧 매화로세
丁寧明月夜(정녕명월야) 재삼 고하노니 달 밝은 밤에
記取影橫斜(기취영횡사) 빗겨 있는 그림자 모습 기억해 두게나


무슨 연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은 온 산이 눈으로 가득 찬 산을 지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흰 눈뿐인데, 그렇다고 산에 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덮여서 안 보일 뿐이다. 흰 눈이 보이는 것은 가릴 수 있지만, 냄새마저 묻어 버릴 수는 없다. 철이 철인지라, 시인이 산을 지날 때, 매화는 어김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비록 눈에 덮여 그 싱그럽고 화사한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인은 매화가 있는 곳을 알아채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 그 비법은 다름 아닌, 매화 향기를 기가 막히게 맡아 내는 시인의 능력이다. 매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향기만으로 매화 있는 곳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시인의 능력은 단순히 뛰어난 후각 기능 덕이 아니고, 매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에서 말미암은 것이리라.

이처럼 평소 매화를 늘 끼고 살던 시인이지만, 눈 덮인 산속에서 향기만으로 매화를 만나자, 그 고혹적인 자태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속으로 자신에게 거듭해서 타이른다. 달밤에 비스듬히 드리운 매화 그림자를 꼭 기억해 주자고 말이다. 왜냐하면 달밤에 비스듬히 드리운 그림자야말로 매화가 시인에게 보여준 가장 매혹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겨울꽃이면 어떻고, 봄꽃이면 또 어떻겠는가? 강인함도 가냘픔도 함께 있는 것이 매화 아니던가? 먼 곳일수록 향기가 더 맑게 전해온다는 매화는 단순한 봄의 전령사가 아니다. 세파에 찌든 마음의 때를 씻어내 주는 여리지만 강렬한 그 무엇이 바로 매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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