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고귀함이 그리운 날
그녀의 고귀함이 그리운 날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3.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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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나목 사이로 한 줄금 바람이 인다. 잔가지 위로 촘촘하게 잇대어가던 투영한 햇살에 비친 자연풍광이 수채화처럼 맑고 청아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어느 날부터 창밖을 살피는 일이 일과가 되어버린 나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미세먼지로 흐릿한 날씨로 기분마저 다운되고 있던 그날 오후였다. 빨간색 끈으로 리본을 곱게 묶은 선물상자를 풀어본 순간 손도 마음도 파르르 떨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G사의 초콜릿이었다. 언젠가 고다이바부인의 감동스토리를 듣고 존 콜리어 화가의 작품 고다이바부인이 궁금하던 터. 윤슬처럼 빛나는 머릿결 미풍에도 흩날릴 것 같은 긴 머리 여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있는 모습, 그 여인의 숭고한 마음을 알기에 쉬 포장을 뜯지도 못하고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설레고 흥분된다.

고다이바부인은 11세기경 영국의 코번트리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레프릭 백작의 아내였다. 당시 레프릭 백작의 무리한 세금징수로 민중들의 생활고는 점점 피폐해지고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고다이바부인은 남편에게 민중들의 어려운 고충을 간청하며 세금을 낮춰 줄 것을 청했다. 레프릭 백작은 부인의 간청을 귀찮아하며 감세정책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 백작들은 치안을 유지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였으니 부인의 간청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고 거북한 청이었다.

고다이바부인의 거듭된 감세정책 탄원에 레프릭 백작은 화가 폭발하여 `당신이 알몸으로 코번트리 거리에서 말을 타고 한 바퀴 돌면 간청을 들어 주겠노라'했다. 레프릭 백작은 아내가 나체로 돌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감동하여 집안으로 들어가 커튼을 내렸다. 마을은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고 그녀가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자신의 수치심보다 민중들의 고충을 위해 고다이바부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선 숭고한 마음에 모두가 경의를 표했다. 이후, 레프릭 백작은 부인의 뜻을 받아들여 세금을 낮추고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되었다. 훗날 마을 중앙광장에 고다이바부인의 기마상을 세워 그녀의 뜻을 기리고 있으며, 존 콜리어 화가는 애민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적인 실천으로 책임을 다한 그녀를 화폭에 담았다. 사랑의 묘약 초콜릿, 고디바초콜릿의 상표 고다이바부인의 기마상을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포장을 뜯지 못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덕행을 쌓은 용감한 여인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최초 여성의병지도자 윤희순 선생이다. 그녀는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이 의병으로 전장에 나간 사이 음식과 의복을 의병들에게 제공하면서 여자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여자들은 안살림만 하는 터라 주변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여자가'라며 외려 손가락질을 했다. 그때 윤희순은 강한 메시지가 담긴 노랫말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쏘냐,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라는 의병가를 만들어 아이들과 부녀자들에게 부르게 하면서 모두가 독립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칼 대신 붓을 들었고 `나라를 구하는데 남녀가 따로 없다.'윤희순 선생의 외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여 군자금은 물론 적극적으로 의병활동에 뒷받침했다.

애민정신으로 여성임에도 외유내강으로 꿋꿋하게 한 치 물러남도 없이 남편을 설득하여 민중의 고충을 간청한 고다이바부인, 최초 여성의병지도자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윤희순의 울림. 100주년을 맞이한 3.1절에 더 뜨겁게 파고드는 오늘, 이기적인 나보다 우리로 가치 있는 삶을 설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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