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이젠, 지구의 숨결을 만나다(2)
카와이젠, 지구의 숨결을 만나다(2)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9.03.10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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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나는 내 한 몸의 중력을 감당하며 내 발치만 바라보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화산이 폭발했던 그 날 산은 크게 울부짖으며 가스와 뜨거운 화산재, 돌과 용암을 엄청나게 토해내고, 하늘로 솟구친 뜨거운 것들이 아무렇게나 마구 떨어져 쌓이고, 속이 텅 빈 산은 무섭게 으르렁거리며 붕괴하였을 것이다.

유황 바구니를 짊어지고 올라오는 광부를 만나면 멈추지 않고 올라가도록 한쪽으로 피해주어야 했다. 공간이 좁아 서로 아슬아슬하다. 광부는 유황이 든 바구니 두 개를 양 끝에 매단 긴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균형을 유지하며 우직하게 한발 한발 올라온다. 70~90kg에 해당하는 지구의 중력이 이들의 어깨를 누르고 이들은 이를 버텨낼 뿐만 아니라, 중력을 받는 자기의 몸과 가족들의 생계까지 짊어지고 가파르고 거친 이 길을 매일 오르는 것이다.

어느새 산 정상의 깊은 바닥, 지구의 숨구멍에 도달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황 가스를 품은 수증기가 희뿌옇게 빛나며 뭉게뭉게 달아나기도 하고 내게로 덮쳐오기도 했다. 유황 가스 구름이 몰려오면 그나마 뒤돌아서 눈을 감아야 했다. 사방 자욱하게 일렁이는 유독한 구름 속 저 멀리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푸른빛이 보였다, 뜨거운 지구의 열기에 유황이 자연 발화되어 내는 빛, 가스 불을 켜놓은 듯 날카롭게 일렁이는 블루파이어다.

아디가 우리의 핸드폰을 가지고 위험한 구름으로 들어갔다. 블루파이어 근처까지 가서 동영상을 찍어다 보여주었다. 방독마스크도 하지 않은 아디는 뜨겁고 숨쉬기도 힘든 그곳에 혼자 다녀온 것이다.

순도 99%, 세계에서 가장 순도가 높은 유황이 만들어지는 곳, 이곳 카와 이젠. 땅속에 박아놓은 파이프를 따라 섭씨 300도의 주황색 액체가 흘러내린다. 파이프에서 떨어져 바닥에 퍼진 유황은 서서히 식어 굳어지며 점차 샛노랗게 변한다. 광부들은 판 모양의 유황을 긴 쇠파이프로 깨서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두 개의 바구니가 매달린 막대기를 어깨에 메어 보았으나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메고 15년을 오르내린 아디의 오른쪽 어깨에는 깊게 팬 상처가 굳은살이 되어 있었다.

아디는 파이프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것을 떼어다 기념품이라며 주었다. 또 뜨거운 유황 액을 찬물에 넣어서 몽글몽글한 모양으로 굳어지게 한 것도 만들어 주었다. 그 사이 저 멀리 하늘이 푸르게 밝아오고, 그 아래 검은 크레이터의 굴곡이 도드라졌다. 옥빛의 호수와 주변의 모든 것이 드러나며 마침 수증기와 햇빛의 작용으로 호수 위로 무지개까지 만들어졌다.

크레이터를 다시 올라와 정상에 도착하니 밝아오는 새벽의 상쾌한 공기와 풍경을 만끽하며 올라온 다른 일행들이 막 정상으로 올라온 참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상봉이 더욱더 반갑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간의 서로 경험이 각자 경이롭고 만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뜨거운 화산재에 갇혀서도 견디어내고 살아남아 새로운 움으로 꿈틀꿈틀 싱싱하게 올라오는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나, 살아있어요' 하고 말하는 기특한 생명을 보며,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지구에 태어난 모든 존재들에게 주어진 숭고한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크레이터 둘레 길을 걸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이젠(Ijen)은 그 안에 무엇을 숨겼는지 보여주지 않고 조용하다. 에메랄드빛 칼데라 호수는 아름답게 잔잔하고 간혹 지구의 한숨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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