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이 선거법보다 중하다
국민 건강이 선거법보다 중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3.10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경보와 주의보가 연일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며 미세먼지 해결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북핵보다도 화급한 문제 아니냐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노후차량 통제, 경유값 인상, 사업장 조업 감축, 전국민 차량 2부제에서 인공 강우까지 다양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당장에 성과를 낼 묘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거론돼온 대책을 재탕 삼탕하는 정부의 무능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지구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심판에 어떤 신묘한 대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떨치기 어렵다.

한반도 미세먼지의 진원지로 꼽히는 중국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당하게 책임을 묻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의 눈치만 보는 굴욕외교를 하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그러나 국민들은 적잖이 헷갈린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이런 사설이 실렸다. `중국은 2013년부터 5년 동안의 대기오염 방지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우리 돈으로 270조원의 예산을 썼다고 한다. 철강 생산 능력 8000만톤을 퇴출시키고, 2000만대 노후 차 폐기, 470만개 석탄 보일러를 가스·전기 보일러로 교체했다. 먼지 오염 업체의 공공사업 입찰 자격을 일정 기간 박탈했고, 노천 양꼬치 구이까지 금지했다. 그 결과 2013년 89㎍이었던 베이징 공기가 2017년 58㎍까지 개선됐다'.

사설은 `중국은 미세 먼지 대책에 결사적인데 한국은 거의 방치 상태라는 것이 대조적'이라며 정부를 공박했다. 사설대로 라면, 미세먼지를 `방치하는' 한국이 `결사적으로' 미세먼지와 싸우는 중국에 항의를 한다는 것도 무안한 일이 될 듯하다. 중국의 책임을 좌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대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촉구한다'는 식의 외교적 수사만 되풀이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우리에게서 한국에 미세먼지가 유입됐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그들의 뻔뻔한 반응을 한칼에 잠재울 명확한 입증 근거를 확보하고 그들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실효적 공조책을 모색하는 것이 더 급하다.

또 장기적이고 단계적일 수밖에 없는 저감대책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당면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 방안에도 주력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거듭 경고했지만 많은 국민이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상황에서도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와 달리 지방의 군소 도시에서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주민이 열 명에 한두 명 꼴 밖에 안된다. 등하굣길 학생들에게서는 더더욱 마스크를 찾기 어렵다. 미세먼지가 노약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기능이 떨어지는 값싼 마스크를 쓰거나, 한 번 사용하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를 빨거나 말려서 재사용하는 사람도 숱하다.

옥천군은 먼지를 흡수하는 진공 흡입차와 살수차까지 동원할 정도로 미세먼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자체다. 김재종 옥천군수는 주민들에 대한 마스크 지원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기부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인천시가 건강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미세먼지 마스크 지원사업'을 추진하려다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영유아나 어린이는 가능하지만 성인에 대한 지원은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유일한 미세먼지 방어수단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70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생명을 잃는다고 한다. 미세먼지의 공습이 일상이 됐다면 마스크는 생명을 지키는 필수품으로 간주돼야 한다. 국가재난사태 선포까지 논의되는 마당에서 지자체가 그 재난을 피해갈 필수품 보급조차 할 수 없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떤 법도 국민 건강에 우선할 수는 없다. 최소한 저소득층과 노년층만이라고 충분하게 마스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