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센 민족
기가 센 민족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3.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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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3·1절을 맞아 봄나들이를 갔다. 봄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온화한 기온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는 희망의 계절인 만큼 모두를 부풀게 하지만, 소리 없이 왔다가 총총 사라져 안타까움도 준다. 길고 음산한 겨울, 모두 안일의 꿈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노고지리 소리가 들리면 벌써 봄이라 한다고 김동인은 말했다. 남보다 앞선 감각을 지닌 시인들도 느끼지 못할 만큼 봄은 살짝 오는가 보다. 송나라 때 대익이란 시인은 온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돌아오는 길 매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고 노래했다.

그렇다. 춘소일각 치천금(春宵一刻 値千金) 봄밤의 한순간은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다. 봄이 왔다고 모두 마음이 들뜰라치면 벌써 따가운 햇볕에 그늘을 찾게 될 만큼 봄은 사라지기 바쁘다. 그것은 긴긴 겨울밤 잠 못 이루던 기억이, 얼마 안 가 조금 잠을 설쳤다 하면 동녘이 밝아올 정도로 짧아졌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봄날 밤의 한가롭고 아름다운 경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나다고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미세먼지가 심했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안개가 잔뜩 낀 듯 지독해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어느 듯 군산항에 다다랐다. 군산항. 군산항은 개항과 동시에 몰려든 일본인들에게 전라도의 넓은 평야는 새로운 기회를 준 땅이었다.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을 전후로 하여 그들은 일제의 강력한 지원 아래 토지를 빼앗고 새로 둑을 쌓아 농지를 만드는 간척 사업을 진행하였다. 전라도의 넓은 농지는 일본인 지주와 친일 지주들이 운영하는 거대한 농장으로 변하였고 대다수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일본인 지주들이 소작료로 챙긴 쌀은 군산항에 모아져 일본의 오사카로 보내졌다. 이렇게 군산항은 일제 강점기 국내의 3대 항구로 곡물 수탈의 상징이 되었다. 군산의 동네 이름에는 장미동, 미장동, 미원동, 미룡동 등 쌀 미(米)자가 붙은 곳이 많은 데, 이는 바로 군산이 쌀 수탈의 기지였음을 보여준다. 군산내항 일대는 `쌀 곳간'을 의미하는 장미동(藏米洞)으로 불렸다. 일제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와 충청도 일대에서 수탈한 미곡을 임시로 쌓아 두었던 부두 창고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리 한국인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기가 센 민족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15년간 기자생활을 한 영국의 `마이크 브린'이란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은 강한 사람에게 꼭 “놈”자를 붙인다고 했다. 말하자면 미국놈, 왜놈, 떼놈, 소련놈 등 무의식적으로 “놈”자를 붙여 깔보는 습관이 있단다. 특히 일본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놈, 또는 왜놈이다. 반대로 약소국엔 관대하여 아프리카 사람, 인도네시아 사람, 베트남 사람 등 이런 나라에는 절대로 “놈”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는 한국의 산야는 음양이 강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강할 수밖에 없고 강한 자는 강한 종자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로 인하여 더는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핸들을 바꿔 돌아오는 길에 만리포를 들렀다.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은 마치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졌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좁쌀 톨 만한 모래도 없다. 올여름에는 꼭 손녀를 데리고 이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걷고 싶다.

잠이 없는 파도는 철썩철썩 가슴만 태우고, 새봄의 짧은 밤이 깊어 간다. 봄밤이 아름다운 만큼 어렵게 얻은 짧은 시간도 천금처럼 아깝고 귀중하게 여겨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의미 있는 새봄의 밤이다. 3.1절. 3.1절은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게 한다. 독립만세운동으로 해방의 씨앗이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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