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타령
명문고 타령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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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충북도가 일선고등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소위 명문대학 입시현황을 파악하다가 학교와 교육청의 반발에 부딪혀 중단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그 자료가 필요했다면 충북교육청에 협조요청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충북도가 일선학교를 대상으로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을 보면 일선학교를 충북도의 하급기관쯤으로 여긴 것 같다.

지난해 말, 충북도와 충북도교육청이 고교무상급식 배분조건에 합의할 때 충북도가 명문고 육성을 조건으로 내세워 의아했는데, 한편으로 이해를 했던 것은 여론에 밀려 합의에 이르면서 일방적인 반대가 아니라 충북도도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도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방법 정도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시종 지사의 행보를 보면 명문고, 즉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설립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4일 이 지사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만나 충북 명문고 설립 등 교육현안을 건의했다고 한다. 이 지사가 자사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명문고가 없어 충북의 인재 유출이 심각하고 앞으로 충북발전을 이끌 지역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지사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의 평준화 교육과 공교육으로는 지역인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인데 무엇에 근거한 발상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교육의 평준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차원에서도 자사고와 특목고의 폐지를 추진해 나가는 마당에 명문고 타령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백번 양보해서 충북에 일류대학에 많이 보내는 자사고가 있다고 치자. 그 학교에는 충북출신 학생보다 타지에서 몰려온 입학생들이 훨씬 많을 텐데 그 학교를 졸업한다고 그들이 다 충북의 인재가 된다는 것인지, 반대로 충북의 유능한 학생이 타지방의 자사고에 가면 타지방의 인재로 싹 탈바꿈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런 식이라면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자사고가 있는 강원도는 최고의 인재의 고장이 되었어야 했을 텐데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각 급 학교에서 특정학교 합격홍보물을 게시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통보했다. 이것은 능력과 상관없이 출신학교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구분하고 배제하는 학벌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고, 교육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은 명확하다. 현실적으로 어렵고 힘들더라도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공교육의 수준을 상향평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명문고 타령은 뜬금없다. 임기 내내 4% 경제, 강호축 개발, 무예마스터스 같은 일에 전념해온 이시종 지사가 언제부터 교육에 관심을 가졌는지 모를 일이다. 소위 명문 자사고를 세우려면 교육청의 협조와 막대한 예산도 필요할 텐데 광역단체 중 교육투자예산이 가장 적은 충북에 그런 대책들은 있는지 그 주장의 근거를 알 수 없다. 만약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학교 부지 기증자가 있고,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할 기업을 확보해 놓고 자사고 설립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지역인재 육성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인재에 대한 규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시종 지사처럼 명문고를 나와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정부의 요직에 있으면서 지역 예산을 확보하는 데 힘이 되거나 큰 기업을 일궈 지역에서 추진되는 일을 잘 도와주는 사람을 지역인재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나의 지역인재 개념은 좀 다르다. 명문고와 좋은 대학 나와 중앙에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퇴직 무렵 고향에 내려와 봉사하겠다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이나 충북엔 집 한 칸도 없어 재산세나 양도세 같은 세금은 서울에 다 내면서 지역경제를 살리자고 부르짖는 자들, 선거에 떨어지면 서울로 올라갔다가 선거 때만 내려오는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했어도 지역인재는 아닌 것 같다.

명문고와 일류대학은 나오지 않았어도 묵묵히 고향을 위해 일하면서 고향을 지켜온, 앞으로도 지켜갈 뒷산의 굽은 소나무 같은 이들이 지역인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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