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말고 보라!
생각하지 말고 보라!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3.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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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이가 들면 쌓기보다는 더는 삶이 좋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기들하고 만나서 수다를 떨다 보면 모두 끊는 게 많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이성도 끊고, 먹는 것도 점점 줄어든다.

친구들하고 담소를 나누면서 점점 끊는 게 많아지니 삶이 단순해져서 좋다고 하면서, 이제 생각만 끊으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옆 친구가 `아니, 철학 하는 사람이 생각을 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 친구가 모르는 게 있다. 원래 철학(哲學)은 말(생각) 끊는 걸 배우는 학이다. 철학에서 철(哲)은 끊을 절(折) + 입 구(口)이다. 곧 입을 닫는 일, 말을 끊는 일, 생각을 끊는 일을 배우거나 실천에 옮기는 게 철학이다. 철학은 생각을 많이 하기보다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배우는 학문이라는 말이다.

`생각하지 말고 보라!'20세기의 위대한 서양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이다. 이게 쉬운 일일까? 경험에 비춰보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생각이 많아서 잠 못 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생각을 안 하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안다. 생각을 멈추려 해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서 머리에 지끈지끈 열이 나면 잠이 안 오는 건 물론이고 머리도 아프다. 생각 그만하고 자야지 하고 결심을 하면 그게 또 다른 생각이 되어 역시 잠을 쫓는다. 생각을 잠재우는 일은 이렇게 어렵다.

생각은 자동적으로 올라온다. 어디서 왔는지, 왜 올라왔는지 모르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 머리를 꽉 채운다. 하고 싶어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수학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기획안을 짜낼 때처럼 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에 생각하는 양 전체를 놓고 보면 그런 생각은 얼마 안 된다. 대부분의 생각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생각에 집중되기보다는 어쩐 일인지 현재 하고자 하는 일이나 생각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공부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면 공부가 안 되는 법이고, 말다툼한 집사람 생각이 나면 열이 나서 일하다 말고 씩씩대게 된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일이나 정신 건강에 방해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안 하거나 끊는 일은 정신 건강에 엄청나게 좋다. 담배를 끊는 것이 몸에 좋은 것처럼 생각을 끊는 것이 정신에 좋다는 걸 보장한다. 근데 그건 쉽지가 않다. 자동적으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나?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이때 뒤에 있는 `보라'라는 말이 역할을 한다. 자기 머리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를 계속 보고 있으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그걸 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사라지기도 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나고 있는 걸 보라, 그러면 분노가 사라진다.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라. 이렇게 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보장한다. 다른 사람하고 어울릴 때 말이 적어져서 분주하지 않다.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일도 없다. 일이 닥쳤을 때 겁이 나서 때를 놓치는 일이 없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보면서 내던 화도 절로 사라진다. 멍청한데도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여 타인을 아래로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답답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무심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다. 기득권에 안주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갑갑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집사람하고 사이좋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을 끊는 건 이렇게 좋다. 누군가가 나보고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할 뿐이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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