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림자
시간의 그림자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03.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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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몽환적 아름다움이 이런 것일까.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 블레드성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둘러싸고 있는 블레드호수와 함께 성을 지탱하는 공기 한 점, 하늘의 빛깔마저 잔잔함으로 다가온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성, 눈에 들어오는 사방이 온통 그림 같은 곳, 그곳도 분명히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땅 아래 사람들은 자연히 위를 쳐다보며 살아야 했으리라. 어떤 때는 같은 인간으로서 낮은 자세로, 또 어떤 때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면서도 신분의 차이에 각기 다른 길을 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성주는 누구였으며 또 어떤 품성의 소유자였을지 궁금했다. 설명에 의하면 1011년경 신성로마제국 헨리2세가 어느 주교에게 헌정한 성이라 한다. 섬김을 받았을 테고 자기만의 성에서 그는 필시 낮은 곳의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이어가야 했을 것이다. 영화처럼 그 시절의 모습이 지나가고 있다. 지진으로 소실되었다가 1800년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깊은 시간의 그림자는 그렇게 그곳에서 걸음을 묶어 놓았다.

성은 의외로 아담했다. 성곽 안에는 우물이며 대장간, 인쇄소 등이 있는걸 보면서 그때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아직 사람의 냄새가 남아있다고나 할까. 덮어진 우물의 뚜껑까지 묵직한 느낌으로 흐르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와 마주하듯 낯설지가 않았다. 모두가 성안에서 평안을 간구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성주의 삶은 어떠했을까. 군림만 했을까. 아니면 성의 안과 밖의 사람들에게 삶의 여유를 나누며 살았을지 궁금하다. 시대적 배경도 그 가운데 한 몫을 감당했겠지만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낮이가 있었다는 어설픈 판단을 거두지 못했다. 하늘과 가까울수록 빼어난 경관과 함께 성주도 자기만의 영역에 만족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한편 그것도 지속하고 싶었을 하나의 선한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블레드성에서만 볼 수 있는 천혜의 풍경들이 그 일면을 증명이라도 하듯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성의 마당에서 또 다른 기이함을 보았다. 지형의 특색과 함께 낮은 자나 높은 자에게도 알프스의 만년설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에서는 모두에게 이렇듯 또 다른 평등함이 부여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보이는 것에만 국한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안에는 보이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식들이 투영되어 있었을 테니까.

오래전의 사람들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야기들은 옛것을 거슬러 미래를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기억될 내 그림자에 대해 조금씩 염려를 쌓도록 했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성의 그림자는 묵언으로 그렇게 나를 그곳에 세워두고 있었다. 또렷한 기억은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내 삶의 그림자가 정갈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것을 현재 진행형으로 삼으며 멈추지 않는 걸음이고자 했다. 그날로부터 블레드성 위의 쪽빛 하늘에 둥근 시계를 하나 걸어두고 떠나온 기분이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 곁에 그림자처럼 남아서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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