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도 오경례 효자각 앞에서 `효'를 생각한다
현도 오경례 효자각 앞에서 `효'를 생각한다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3.0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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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 인간의 모든 행동 가운데 부모님께 드리는 효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글귀이다. 효(孝)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효사상'은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의 태학이나 신라의 국학에서 교육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논어'와 `효경'을 기초로 한 유교적 `효사상'이 지식인들의 기본교양이 되었다. 고려 말기 권부의 `효행록'과 조선시대의 `효행록'`삼강행실도'는 효를 실천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하여 사회 유지를 위한 규범으로 만든 것이다.

각 마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 가운데 부모에 효도하고 가정과 공동체를 지키고 살린 감동적인 이야기는 훈장처럼 마을에 회자하고 또 마을을 지키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남청주나들목 인근에 현도 꽃동네대학교가 있다. 이곳에서 현도면 소재지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조금 가다 보면 중삼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 길 옆에 아담한 효자각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하늘이 도운 효자 이야기가 전해지는 오경례 선생의 효자각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788년(정조 12)에 중건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는 효자 정문 편액과 1788년(정조 12) 이기발이 짓고 선생의 8대손인 오형준이 쓴 `행적기문판(효행에 관한 기록문)'이 걸려 있다. 그리고 밖에는 효자문(孝子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오경례 선생의 호는 자화이며, 본관은 보성인데, 이곳에서는 현도 오씨 또는 달계오씨라 부른다. 그만큼 이곳에 보성 오씨들이 오랜 세월 살아서 제2의 본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어질고 착했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부모님께는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같이 사냥과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으면 부모님께 요리해 드렸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병환으로 기력이 쇠약해지자 백방으로 낫기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이 꿩고기를 해드리면 낫는다는 말에 하늘에 서원을 했더니 꿩이 마당으로 날아들어 공양하고, 노루의 간이 기력 회복에 좋다는 말에 노루를 사냥하기 위해 한겨울 산속을 헤매기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어느 날 날아가던 독수리가 노루를 마당에 떨어뜨려 노루 간을 아버지께 요리해서 드리는 등 하늘도 감동하는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 앞에 움막을 짓고 정성과 예를 다하여 모시고 하산을 했으나 어머니께서 병중에 있어 놀라실까 염려되어 어머니를 뵐 때는 상복을 입지 않고 정성으로 간호해서 기운을 차리게 했다. 그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역시 3년간 묘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 이러한 효행사실이 주위에 알려지자 숙종임금이 명하여 정문을 설치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했다.

오경례 효자각 앞에서 이 시대 바람직한 `효'를 생각하게 한다. `효사상'은 시대와 이념에 따라 그 내용이 다소 변화되기도 하였으나 부모를 공경하고, 그 뜻을 받들어 섬기며 봉양한다는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나아가 가정과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동체 의미마저 희미해지는 요즘 인륜의 가장 으뜸가는 덕목이 바로 `효'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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