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유지되는 것이다
평화는 유지되는 것이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3.0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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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뿌리였지만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분리됐다.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갈라진 종교적 대립이 원인이었다. 두 나라는 아직까지도 분리독립 당시의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반목의 진원지는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는 국경의 카슈미르 지역이다. 이곳에서 크고작은 군사적 충돌이 이어졌다. 많은 사상자를 낸 전면전도 세 차례나 벌어졌다.

최근 카슈미르에서 양국이 또 충돌했다. 지난달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차량 폭탄테러가 도화선이 됐다. 이 공격으로 경찰 40여명이 사망하자 인도는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섰다. 다음날 파키스탄이 대응 공습에 나서며 카슈미르는 전운에 휩싸였다. 파키스탄이 교전 중 생포한 인도군 조종사를 돌려보내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으나 긴장은 가시지 않고 있다.

양국이 상대국 영토로 전투기를 출동시켜 공중전을 벌인 것은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독립을 놓고 3차 인-파전쟁을 벌였던 1971년 이후 근 50년 만이다. 지금 두 나라의 충돌에서는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이 드러난다. 견원지간의 두 나라 사이에 반세기에 걸쳐 불안하나마 평화가 유지돼왔다는 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파국의 원인을 놓고 양쪽의 주장이 상이하다 보니 책임을 어느 쪽에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한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고, `다음을 기약할 만한 유의미한 만남'이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까지 했다.

이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국내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합의는 실패했지만 양쪽이 대화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만큼 인내를 갖고 중재자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얄팍한 꼼수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모면하려는 북한의 비핵화 쇼가 여지없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다른 하나다. 대화보다는 대북제재의 고삐를 죄어 백기를 들 때까지 벼랑으로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 갈등의 역사를 보면 `평화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나라의 국경은 독립 이후 끊임없이 소요와 평온이 반복돼 왔다. 그래서 두 나라가 지난 3차 전쟁 이후 48년간 심각한 충돌없이 국경의 평화를 유지해온 것은 역사적 성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에도 국제사회가 중재에 나선 만큼 카슈미르에서 조만간 포성이 멈추고 다시 평온이 시작될 것이다. 전례로 볼 때, 이 불안한 평화는 시한부가 될 공산이 높다. 결국 카슈미르에서의 평화는 갈등과 평온의 주기를 최대한 길게 유지하려는 노력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남북의 갈등사 역시 인도와 파키스탄의 피곤한 역사와 다르지 않다. 최근 2년 가까이 한반도에는 전례 없는 평화 무드가 유지되고 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만들기로 합의하고 감시초소(GP)까지 철수한 것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대 사건이다. 북한이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것이 불과 6년 전 일이다.

이번 하노이회담 결렬을 계기로 대북정책 기조를 대화에서 압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의 평화 무드를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목표는 미국의 안전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전이다. 운신의 폭이 북미관계의 틀 속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 과정에서 북한이 최소한의 동족의식을 갖고 남한을 배려토록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세상에 완결된 평화는 없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평화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굳히고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인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책도 성급한 완성이 아니라 과정의 유지에 방점을 찍고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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