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봄
100년의 봄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3.03 1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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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1910년 대한제국은 한일강제병합으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며 멸망하였다.

100년 전 이 땅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고, 문화를 왜곡하고, 모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는 등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렀다.

이를 보다 못한 우리 국민은 1919년 3월 1일. 종교, 신분, 나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뜻으로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운동을 벌였다. 3·1만세운동은 지역을 막론하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 민족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리 민족의 단결성! 1894년 동학운동을 주도했던 동학농민군은 항일 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 맥락은 3·1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1919년 3월 1일 거행된 기미 독립선언과 만세 운동은 한반도의 곳곳으로 스며들어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에까지 독립운동단체가 결성되어 대한독립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앞잡이 노릇으로 제 배만 불리던 친일파에 대한 문제가 처리가 안 되고 남아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의 주체 매국노 이완용은 여의도의 7.7배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였으나 1%도 환수하지 못하였다.

친일경찰 중에서도 악질인 노덕술은 중국에서 27년간 무장투쟁을 벌이고 온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붙잡아 가서 욕을 하고 뺨을 때리는 등 치욕을 주어 북으로 가게 했고, 그 후 후손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갖은 고초를 겪었다. 친일 경찰의 만행은 일본 경찰보다 더했으며 갖은 고문을 감행했다.

지금도 친일파 후손들은 이 땅에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일제 강점기부터 축적해 온 부를 누리며 부자로 뻔뻔하게 살아가고, 독립군의 후손들은 독립운동자금으로 없어진 빈털터리 재정에 억울한 누명까지 이어받으며 살아왔던 천인공노할 역사가 되었다. 더 기막힌 일은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사관에 우리 모두 너무도 익숙하게 살아와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베는 제2차 대전 패배로 인해 해체했던 군대를 다시 자위대로 조직 하였고, 교과서에 역사를 왜곡하여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호시탐탐 독도를 노리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 역시 한마디 없다.

우리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뼈아픈 역사가 그저 시험점수를 위해 달달 외우는 암기 대상일 뿐으로 인식할까 두렵다.

누군가가 피 흘리고 목숨 바쳐 지켜 낸 이 땅을 앞으로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게 할 것인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누리는 자는 아는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가 100년 전 목숨 바쳐 지켜 준 독립운동가의 결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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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2019-03-03 20:47:50
ㅎㅎ 개나 오징어 나 다 높은데있고 다친일파네 이이그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