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느린 길
라오스의 느린 길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2.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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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왁자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우두커니 혼자 남아 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길. 순간 나는 길을 잃은 듯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그 틈을 타 내 기억은 과거 속으로 유영하듯 떠밀려간다.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의 제법 질펀한 양지에 암소 누렁이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그 옆에서 몸집이 작은 어린 여자 아이는 웅크리고 앉아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나를 흘깃 쳐다보고 지나간다. 아마도 길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국임에도 낯설지 않은 길이 사람들을 여유롭게 한다. 가이드를 놓칠세라 열심히 걸음을 옮겨야 하는 여행과는 색다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황톳길은 걷기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여기저기 바닥에 굳어 있던 소똥은 빗물과 함께 질퍽해져 있었다. 가이드는 소똥을 밟지 않으려면 밑을 잘 보고 걸으라 했지만 나는 길섶의 낯익은 풍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미닭을 따라 연신 땅을 되작이는 예닐곱 마리 병아리의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우리 집도 닭을 키웠었다. 봄이면 어미닭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흔들며 제 새끼들을 이끌고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근처에서 연신 땅을 헤집는다. 그러면 새끼들은 서로 어미가 하는 모습을 따라 이곳저곳을 헤집어 놓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의 시골 어디에서도 길가에서 어미닭이 새끼들을 이끌고 걷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오스의 길은 느리기만 하다. 방비엥의 탐남 동굴로 가는 길목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눈빛도, 매어져 있는 끈도 없이 집 근처에서 새끼들을 옆에 끼고 되새김질을 하는 소들의 모습도, 길섶 여기저기에서 병아리들을 이끌고, 풀숲을 되작이는 어미닭의 모습에서도 한없이 느리게만 보인다. 덩달아 느린 길을 걷는 이방인들도 바쁠 게 없다. 가이드들이 오히려 이방인들을 따라 걷는다.

때론 빠르고 깨끗한 길들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라오스의 조금은 지저분하고 느린 이 길이 답답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느린 이 길이 정겹기만 하다.

길 한가운데 누워 있는 소떼를 위해 한참을 기다려 주던 툭툭이 기사의 마음, 빗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정장 차림의 아가씨가 트럭이 튀긴 황토물을 뒤집어쓰고도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이던 모습들은, 빠른 것만을 좇는 우리에게는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겨울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나무들이 저마다 모습으로 제 몸을 바람에 내맡기는 것을 보았다. 욕심을 버리면 될까. 바람은 나무에만 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람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휘저으며 지나간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은 산을 훼손하고, 빠른 길을 위해 이곳저곳을 뚫기에 바쁘다. 그 속에서 많은 생명이 스러져 가고, 잊혀 가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이곳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부는 바람은 왠지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내가 가진 욕심을 부끄럽게 만든다. 작은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하고, 불편하지만 기다려 줄줄 아는 너그러움도 배우게 된다. 그래서일까. 느린 이 길이 나를 다시 예전의 그 어린 소녀 시절로 이끌어 주었던 모양이다. 암소 누렁이가 풀을 뜯고, 엉덩이가 퉁퉁하게 살이 오른 어미닭이 마당을 헤집고 다니던 그 옛 시골집. 어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느린 길을 닮은 이 길 끝 어딘가에는, 느리기만 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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