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2.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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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처음 접하는 타인의 경우에 예쁘면 더 호감이 간다. 부르기 쉽고 쓰기도 좋게 많이 짓는다. “서연”은 여자로서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게 이름이다. 내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붙여준 것이다. 실제로 살면서 이름은 많은 영향을 준다. 청소년들이 처음에 친구관계를 맺을 때 그 매력도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촌스러운 사람에 비해 멋지거나 예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름이 예쁜 여자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 비해 훨씬 미인으로 인식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이하고 매력적인 아이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자란다고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까지도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곤혹을 치르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재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볼 때마다 잊지 않고 요즘 재정사정은 좋으냐고 묻는 분이 있다. 유명세를 타는 장관님께 빗대기도 하고 여자 국회의원이 있어서 의원으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이러면 듣기 싫어서 짧게 대답하거나 헛웃음으로 넘긴다.

부모님이 굳이 재(在)자 돌림을 땄다. 여자에게 재(在)자가 어울리기나 하는가. 이름을 바꾸고 싶지만, 절차는 쉬울지라도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번거롭다는 핑계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개명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동명이인이 많은 흔한 이름이 싫어서, 일이 잘 안 풀린다거나 이유 없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인은 바꾸고 나니 새로 태어난 느낌이라고 한다. 그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꽃 중에도 꽃말이 바뀐 장미가 있다. 불가능에서 기적으로 전혀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난 파란 장미다. 이 꽃은 식물의 파란색을 내게 하는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다. 자연에서 이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시중에서 보는 대부분이 흰색에 염색해서 만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볼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이유에서 꽃말도 불가능이었다. 2004년 미국 벤더빌트대학의 연구자가 치매치료제를 연구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푸른빛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를 장미에 이식하여 파란장미를 피워낸 것이다. 꽃말도 극과 극인 기적이 되었다. 부정에서 긍정적인 얼굴로 변한 것이다.

파란장미는 보기에도 신비한 꽃이다. 불가능을 가능이라는 긍정적인 뜻에서 성년의 날 선물로 인기라고 한다. 스무 살은 도전을 해야 하는 나이임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만 희망을 가지면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꽃말 때문이다. 색으로 인해 의미가 확 달라진 셈이다.

고대 로마 격언 중에 이름이 곧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재정”은 어떤 숙명을 담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무채색인 삶이 이름 탓일지도 모른다. 이 칙칙한 이름을 벗으면 내 가을이 수채화로 선명해질 수 있을까. 지금도 개명은 망설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스물여덟 해를 거슬러 올라가 둘은 이미 서로의 사랑이 되었다. 벚꽃이 발그레 부어오를 즈음, 문득 봄바람에 이끌려 못이기는 척 따라나설 참이다. 그리하여 예쁜 이름의 새 명함을 내밀어 보아야겠다. 또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에게로 가서 길이 되리라. 너는 나의, 나는 너의 길을 내어 운명이 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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