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사이
보수와 진보 사이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02.24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겨울 숲이 고요하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 진달래 마른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니 벌써 쥐눈이콩만 한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그렇게 얼음 밑으로 봄은 소리 없이 오고 지난해 부려놓은 새로운 생명이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후배와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괴산 `산막이 옛길'을 찾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고즈넉함을 넘어 바람이 소리 내는 문장을 읽을 만큼 한산하다. 즐비하던 좌측 상점들은 동면에 들었는지 일제히 자물쇠로 채워 있다. 오래전부터 떠돌며 국민을 불안케 하는 하강 곡선의 경제는 언제쯤 상승곡선을 타려나.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는 후배와 정치·경제 개념의 보수와 진보에 관해 논쟁을 펼치며 오르다 보니 숨이 턱 막힌다.

초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 없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였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려 정부가 개입하여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는 경제구조였다.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시장주의를 지향하여 정부는 국방, 치안, 외교 등 최소한의 기능만 담당하는 자유방임주의지만 결국은 경제 대공항,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시장은 실패하였다. 이로 인한 후기 자본주의는 케인즈 이론을 바탕으로 불가피한 정부의 시장개입을 불러왔고 정부의 지출을 증가시켜 시장구조를 의도적·계획적인 선순환 구조로 만들려고 유도했다.

정부가 각종 규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장을 통제하면 혜택을 보는 계층도 많겠지만 국가 전체 경제의 흐름은 불안정하니 그야말로 딜레마다.

보수는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가의 성장을 꾀하고 진보는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복지를 꾀하지만, 양측 진영 모두 장단점을 한몸에 지닌 채 적절한 수위를 조율하며 공존해왔다. 시장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기업들은 국외로 나갈 수밖에 없고 국내 실업률은 증가하니 한 체제가 정권을 잡으면 몇 년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십 년 주기의 정권 교체설을 주장한다.

디테일한 맥락까지 행간 읽기 하며 피력하는 그녀의 정치, 경제 구조 담론을 듣다 보니 허기가 밀려온다. 몇몇 음식점이 보이지만 사방이 조용하다. 썰렁한 음식점 문을 밀고 들어서니 고희 가까운 여주인이 첫 손님이라며 반색한다. 즐비한 메뉴판을 갖다 주지만 이 정도로 인적이 없으니 식자재가 제대로 갖춰 있을까 싶어 “저희가 어떤 것을 먹으면 좋을까요?” 물었더니 야생 버섯찌개와 파전을 추천한다. 절반도 못 먹은 음식을 남겨 놓고 현금으로 값을 치르니 현금영수증을 할 거냐고 묻는다.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는 뜻을 전하니 함박웃음이다. 평소에 소규모 상점이나 시장에 들를 때면 될 수 있는 대로 현금을 사용한다. 꽁꽁 얼어붙은 재래시장 경제 살리는 길에 같은 서민으로서의 작은 인정 부조이다. 무엇보다 생산과 소비는 유기체라서 시장 경제가 잘 돌아가야 서로 잘사는 까닭이다.

커피를 마시고 산행 길목의 상점을 둘러보는데 문을 연 곳이 없다. 겨울 두어 달까지 보수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이 보이지만, 그 문장이 곧이곧대로 평면 읽기가 안 되는 것은 아마도 직업병이다. 늘 사람 북적이고 시끌벅적한 시장 풍경은 전설이 된 걸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후배가 묻는다. 국가와 개인 중에서 무엇이 먼저냐고, 그래서 되물었다. 닭과 달걀 중에서 무엇이 먼저냐고. 우문우답(愚問愚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