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정책 돌아보는 계기 돼야
노인정책 돌아보는 계기 돼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2.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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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일본이 기저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용 후 버리는 기저귀가 급증해 지자체들이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유아용 기저귀가 아니다. 절반 이상이 성인용이다. 지난 2017년 일본에서 생산된 성인용 기저귀는 78억개에 달한다.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으니 기저귀 폐기물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노인 인구나 요양원이 많은 지자체는 생활폐기물의 30% 이상을 성인용 기저귀가 차지한다. 잘 타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 소각시설에서 반입을 거부하기도 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30%에 육박하는 초고령 국가 일본의 한 단면이다. 세계 최장수 국가에 드리워진 그림자이기도 하다. 모든 노인들이 품격있는 삶을 누리지는 못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고령자가 500만명에 달한다. 2030년에는 700만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성인용 기저귀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질 터이다.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1경7000조원으로 추산된다. 1경은 1만조다. 올해 우리 정부 예산 470조원을 떠올려야 감을 잡을 정도의 천문학적 금액이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부유한 국민이다. 이 가계자산의 70% 이상을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노인들이 가장 부자인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일본은 노인들의 파산이 늘어나 고민에 빠져 있다. 노년을 받쳐줄 자산이 넉넉하다고는 하지만 써도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은 아니다. 고령으로 가면서 소진되기 마련이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국민연금만 받는 노인들은 자산이 바닥을 드러내면 곧바로 빈곤에 봉착한다. 지난해 독거노인 600만명 중 200만명이 파산 상태에 놓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노인들도 늘어나는 수명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최근 대법원이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높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을 해서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나이의 최대치가 가동연한이다. 이번에 대법원 판결이 수영장에서 사고로 숨진 어린이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나왔듯이, 소송에서 당사자의 미래 추정 수입을 계산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 법원은 평균수명 증가와 정년 연장, 국민연금 수급개시 시기(65세) 등을 근거로 가동연한을 상향 조정했다. 노동시장에서 고령인구가 급증하는 현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이 갑작스럽긴 했지만, 고령화 추세가 가팔라지며 가동연한 연장은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그렇더라도 향후 파장은 적지않을 것 같다. 우선 정년연장 논의가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적지않은 선진국이 이미 65~ 67세를 정년으로 삼고 있다. 우리도 5년 후면 65세 이상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시대에 돌입한다. 정년연장을 서둘러도 모자랄 판이지만, 최악의 실업률에 허덕이는 청년층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다. 법정 노인 연령을 70세로 높여야 한다는 정부의 논지도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 재정에 숨통이 트일지는 모르겠지만, 노인 빈곤율이 OECD 1위인 우리의 척박한 환경에서 복지 수혜 대상을 줄이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 마련됐지만, 결실을 이룰 토대는 이렇게 허약하기 짝이 없다. 경제대국이자 복지강국 일본의 노인정책도 늘어나는 기저귀와 파산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초고령 사회의 문턱에도 못 가 기진맥진하는 우리로서는 심기일전을 거듭해도 모자랄 판이다. 정년 연장과 노인연령 상향 등 제도적 개선도 궁극적인 목표는 노인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늘린 이번 대법원 판결이 정부를 재촉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노인이 수명 연장을 넘어 최소한의 품격을 갖춘 삶을 누릴 수 있는 촘촘한 복지정책을 모색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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