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타령
친구 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2.20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웬 친구 타령이냐고요? 그래요. 친구에 허기진, 친구에 목마른 친구 가난뱅이거든요. 친구를 많이 가진, 아니 죽고 못 사는 친구를 가진 이들이 몹시 부러웠어요. 하여 친구는 내게 있어 늘 아킬레스건이자 노스탤지어였습니다.

어릴 때 초등학교를 세 곳(안동동부, 임하동부, 경주천북초등학교)이나 옮겨 다녔으니 유년의 친구인 불알친구가 없고, 죽마고우(竹馬故友)라 칭할 초동친구를 갖지 못했습니다. 내게도 소꿉놀이하던 어릴 적 친구들이 분명 있었을 터이나 어릴 때 살던 곳을 되돌아간 적이 없어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도 까마득하니 없는 거나 진배없음입니다.

중·고등학교도 역마살이 낀 부모님 따라 대전 광주 대구를 옮겨 다녔고, 20대 중반에 공무원이 되어 학연·지연·혈연 하나 없는 충북에 정착해 살다 보니 친구의 목마름과 굶주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퇴근 후 동창회나 향우회에 가는 직장동료가 부러웠고, 인사 때가 되면 저희들 끼리 속닥거리는 걸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공직 퇴직 후 45년 만에 초로가 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동창회랍시고 하고 있는데 세월의 간극도 있고 사는 곳도 멀어 깊은 우정을 나누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사회친구나 직장친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나름 친구와 지인의 지평을 넓히며 살아왔으니까요. 핸드폰에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는 이와 카톡으로 소통하는 이가 어림잡아도 2천 명은 넘으니까요.

하지만, 눈 씻고 살펴봐도 막역지우(莫逆之友)가 없으니 아무래도 헛살았나 봅니다. 술친구, 직장친구, 문학친구, 성당친구, 골프친구, 이런저런 친구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그렇듯 필요에 의해 사귄 친구는 필요가 다하면 멀어집디다.

사흘이 멀다 않고 만났던 술친구도 술을 끊으니 소원해지고, 의지가 되었던 직장친구도 은퇴하니 제 갈 길로 흩어지고, 골프친구도 채를 놓으니 연락이 뜸해지고, 성당친구도 냉담하면 멀어지더이다. 그게 사회친구고 세상인심이더라고요.

그러므로 친구는 필요가 아닌 존재 자체가 좋아야 진정한 친구입니다. 친구(親舊)의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가깝게 사귄 벗을 이릅니다. 곰삭은 포도주처럼 곰삭은 우정을 가진 이가 친구이지요.

벗을 뜻하는 한자에 붕우(朋友)가 있습니다. 붕(朋)이 날개 우(羽)자에서 나왔고, 우(友)는 손 수(手)와 또 우(又)자를 합쳐 만들었다고 하니 진정한 친구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양손이 있는 것과 같이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친구를 제이오(第二吾), 즉 제2의 나라고 하였듯이 진정한 벗은 어쩜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일 겁니다. 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어지교(水魚之交)같이, 목숨을 내주어도 좋을 정도로 친한 문경지교(刎頸之交)같이, 관중과 포숙의 사귐과 같은 허물없는 관포지교(管鮑之交)같이, 향기로운 풀인 지초와 난초 같은 지란지교(芝蘭之交)같이.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친구 한두 명쯤은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천금(千)을 얻기는 쉽지만 벗을 얻기는 어렵다'는 속담처럼 진정한 친구를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디언들도 친구를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 했는데 아직도 그런 친구 하나 두지 못해 이렇게 친구 타령하고 있으니 오호통재입니다.

바야흐로 지인은 많은데 진정한 친구가 없는 삭막한 사회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대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대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그대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는.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