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없다
있다, 없다
  •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2.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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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안승현 청주한국공예관 학예실장

 

담이 있다. 하지만 무릎 높이도 안 되는 담이니 담이라 하긴 어렵고 경계선이라 할까? 그래서 난 담이 없는 집이라 우긴다. 경계선을 따라 명자, 매화, 붓꽃이 심겨져 있어 겨울을 제하면 늘 생기가 넘치는,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대문이 있다. 하지만 자물쇠가 없는 대문이라 있으나 마나. 그나마 낮에는 열려 있다. 그러니 동네 고양이, 개, 새, 사람 구분없이 찾아든다. 멀리 갈 때는 혹시나 해서 고정걸이를 내려놓고 가지만 누구든 쉽게 열고 찾아와 이야기하기에 좋다.

문이 있다. 하지만 화장실 문과 현관문이 전부. 방문이니 주방문이니 하는 것은 아예 없다. 그래서 늘 서로 어떠한 상황인지 안다. 거실을 중심으로 개방되어 모두가 모여 이야기하고 먹고 즐기는 공간이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밤새는 줄 모른다.

플라스틱이 없다. 정확하게는 일회용품이 없다. 수저는 놋수저와 옻칠수저이고, 밥그릇을 비롯한 주방용품은 도자기와 유기 등 금속제품이다. 물병은 유리다. 모든 그릇이 버릴 것 없이 애지중지하는 용기들이다. 안 쓸 때는 진열품이 된다. 대대로 물려줄 생각이다.

음식쓰레기가 없다. 너무 어렵게 살아서 절대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다.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요리해서 뱃속으로 다 집어넣는다. 사람의 정화능력이 최고인 듯, 행여 요리 시 남은 부산물은 거름탕에서 퇴비가 된다. 톱밥과 낙엽을 적당히 활용한다. 그러니 음식쓰레기 통이 없다.

쓰레기봉투가 없다. 한 달에 한두 장 정도 쓰는 봉투지만 그나마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는 터라 소각용 봉투가 눈에 띄질 않는다. 나사못 하나도 풀어 재활용한다.

공기청정기가 없다. 집진필터 관리와 전기료 낼 돈이 없어서는 아니다. 또 다른 오염원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실내 공기가 나쁘진 않다. 반려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관엽식물을 수경방식으로 키운다. 물을 보충해주거나 갈아주지 않아도 된다. 습도조절이 되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 해가 잘 드는 거실 창 쪽으로는 다육이를 둔다. 겨울은 휴면기라 물을 안 주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실 창 쪽은 늘 커피 한잔하기 좋은 자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거리감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고 잠시 각자의 일을 보러 갈 때도, 잠자리에 들 때에도,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늘 서로 부둥켜안는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어서까지 변함없는 거리이다. 그래서 늘 따뜻한 온기가 있다. 없어도 되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 그랬더니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생겼다.

온 세상이 쓰레기 대란이다. 무단투기, 무단방치, 소각장 문제, 심지어 쓰레기 불법수출까지. 눈을 돌려 집주변부터가 심각한 수준이다. 초등학교 담벼락에 갖가지 폐기물이 무단으로 버려지고 있다. 종량제 봉투는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수거를 해가니 건축물, 생활가구, 음식물 등 뒤섞여 버려지게 된다. 유독 중국인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기엔 도가 심한 듯싶다. 핑계가 되질 않는다.

아침이면 집 주변을 쓸고, 돌담 틈에 끼인 담배꽁초를 끄집어내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야만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폐기물이 되었다.

쓰레기 대란 속에서 아예 없어도 될 것은 안 만들어내고, 이왕 만들어진 것이라면 오랜 시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대를 이어 사용하며 시간의 추억을 더해 갈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예 쓰레기가 될 만한 것을 만들어 내지 않고 배출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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