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가지에 걸린 달
매화 가지에 걸린 달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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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일 년 중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고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하와이 같은 곳을 사람들은 지상 낙원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이러한 지역에는 대부분 혹독한 겨울 추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추위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지고 푸른 초목이 사라져 세상이 삭막해 보이는 겨울을 보내는 것을 사람들이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이 겨울에도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기쁨도, 고통이 끝나가는 것을 느낄 때 받는 희열도 겨울이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이(李珥)는 매화 가지에 걸린 달에서 겨울이 주는 멋에 흠뻑 매료되었다.


매화 가지에 걸린 달(梅梢明月)

梅花本瑩然(매화본영연) 매화는 본디 옥돌처럼 빛나는데
映月疑成水(영월의성수) 달빛이 비치니 마치 물결처럼 보이네
霜雪助素艶(상설조소염) 서리 눈이 희고 고움을 돕고
淸寒徹人髓(청한철인수) 맑고 찬 기운이 사람의 뼛속까지 스미네
對此洗靈臺(대차세령대)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금소무점재) 오늘 밤엔 한 점의 찌꺼기도 없어라

매화는 늦겨울에 피는 꽃이다. 매화가 피는 때도 추위는 여전하지만, 사람들은 매화를 보고 겨울이 끝나감을 그리고 머지않아 봄이 온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매화는 고통스러운 긴 항해가 끝나감을 알리는 등대와도 같은 것이리라. 시인의 생각으로는 매화는 본디 홀로 있어도 옥돌처럼 광채를 발하는 꽃이다. 그런데 여기에 달빛까지 더해진다면, 그 모습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 분명하다.

겨울 밤 추위를 무릅쓰고, 도도한 모습으로 빛을 발하는 매화에 달빛이 내려와 앉은 모습이 시인의 눈에는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매화의 희고 고움은 역설적으로 겨울의 도움을 받아 그 경지가 깊어진다. 서리와 눈이 매화의 미모를 더욱 고혹적으로 만들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매화가 매력적인 것은 이처럼 고혹적인 외양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의 골수까지 파고드는 겨울밤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한 성품이 있음으로써 매화의 매력은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매화를 보며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한 점의 찌꺼기도 없이 정갈하게 씻어낸다.

매화는 그 아름다운 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만, 따지고 보면 매화는 희망이다. 곧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기쁜 소식을 이보다 황홀하게 전하는 방법이 세상에 또 있을까?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는 겨울밤에 달빛이 내려앉은 매화를 보는 것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희망이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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