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설거지 유정(有情)
명절, 설거지 유정(有情)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19.02.1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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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설거지의 양이 또 줄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치마가 흠뻑 젖도록 설거지를 했었다. 창고에 고이 모셔둔 큰 광주리를 내와 말끔히 씻어낸 어마어마한 양의 그릇들을 포개놓곤 했는데 지난해부터는 그마저 쓸 일이 없어졌다. 콩나물시루처럼 언제나 꽉 차 있던 수저통도 이제는 절반으로 줄어 그 빈자리에 국자며 뒤집게까지 자잘한 조리도구들을 들여앉혀 한 식구를 만들었다.

매년 익숙하지 않은 큰집 주방에서 반복되는 설거지로 고군분투하던 나의 명절에도 드디어 봄볕이 들려나. 안갯속을 걷듯 아득했던 설거지에 대한 기억은 이제 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나는 명절주간 해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을 큰집에서 맞이했다. 갓 시집 온 나는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발 디딜 틈 없는 현관 입구의 신발과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재료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설거지 더미에 겹으로 어려웠다. 큰집의 두 형제와 작은집의 두 형제가 저마다 이룬 가정의 식솔들을 이끌고 모여 앉으면 족히 스무 명을 훌쩍 넘겼다. 이들이 차례를 지내고 한 상에 앉아 식사하고 나면 그야말로 설거지 그릇은 식구 머릿수에 두 세배를 더한 숫자였다. 차례를 지낸 제기부터 조리도구까지 산처럼 쌓인 그릇들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명절 설거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의 고유 업무로 자리 잡았다.

그 기억을 차츰차츰 소멸시켜준 건 가장 먼저 아이들이었다. 올망졸망 도토리 같던 조카들이 쑥쑥 자라 대학생이 되고 사회로 나갔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늘 시간을 쪼개가며 생활하고, 취직준비로 하루하루가 고단하다는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날에도 얼굴 보기가 어려워졌다. 어른들 틈에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지런히 포개고 서서, 곁눈질로 한껏 예를 갖춰 차례를 지낼 때마다 어깨를 부딪치곤 하던 풍경은 이제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고전이 된 것일까.

시어른들도 한 분 두 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집안 대소사를 건사함은 물론이요 명절이 가까워 오면 음식 준비에 정성을 다하며 집안의 중심을 잡던 어른들이셨다. 해마다 차례상을 차려내도 늘 실수를 하고 마는 며느리를 채근하기보다는 다독이며 반복해서 하나하나 일러 주시던 가르침은 내가 배워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다.

이제는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식구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있다. 제기에 음식을 보기 좋게 잘 올렸다며 칭찬하던 시어른들, 내가 차려낸 음식을 맛나게 먹고 있던 아이들, 톡 쏘는 갓김치와 무를 갈아 넣어 칼칼한 맛이 일품이던 만두를 종일 앉아 빚어내던 일들, 그 사이사이 책장에 끼워 넣던 책갈피 같은 형님들과의 소소한 수다까지 함께 했던 명절의 날들이 기억 속에 가지런하다. 이십여 년 가까이 도맡아 왔던 설거지 업무가 그저 고단함만은 아니었음을 떠올리게 되는 유정(有情)의 순간들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잣대에 맞추느라 여유 없이 살고 있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이해한다.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오고 있음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삶이려니 하면서도 내년을 또 기다린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따뜻한 햇볕처럼 하나둘씩 성장하고 떠나가며 생겨난 빈자리에 우리의 아이들이 다시 돌아와 앉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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