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개입설이 사실이 되려면
북한군 개입설이 사실이 되려면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2.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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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전두환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민간정부를 무력화한 후 집권했지만 아내로부터는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그는 직속상관인 육군 참모총장을 관저에서 납치하고 대통령을 윽박질러 군권을 장악했다. 전방에 배치된 병력까지 빼돌려 쿠데타에 동원했다. 당시 공모한 전방 사단장은 그의 육사 동기이자 절친이었고, 나중에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서울로 출동하던 이 사단의 참모장(대령)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북의 도발에 대처하라”는 군사령관(중장)의 명령에 “병력은 부대에 대기 중이니 걱정마시라”고 거짓말을 했다. 중장을 농락한 대령은 쿠데타 후 승승장구했다. 대장으로 승진해 자신의 거짓말에 속고 강제 예편된 옛 사령관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 자리에 앉으며 감개가 무량했을지는 모르겠다.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특전사령관과 수도경비사령관은 쿠데타 세력과 내통한 부하들에게 체포됐다.

그야말로 아사리판이었다. 상명하복이 추상같아야 할 군대에 전대미문의 하극상이 난무했다. 병력이 서울로 빠져나간 휴전선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대북 안보를 신주처럼 떠받드는 보수에서 이날의 난장판을 질타하고 성찰하는 소리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쿠데타는 5개월 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나서 완결됐다.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압살한 폭거에 대한 시민의 마지막 항거는 그곳에서 좌절됐다.

엊그제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당 의원 몇몇이 주관하고 지만원씨 등 극우인사들이 참석했다. 지씨는 이 자리에서 “5.18은 북한군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 “광주의 영웅들은 이른바 북한군에 부역한 부나비들”이라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했고, 광주는 북한의 앞마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석한 한국당 의원들은 그의 주장에 적극 호응했다.

어떤 사실관계를 확신하는 주장을 펴려면 최소한의 설득력을 확보해야 한다. 어느 정도 합리적 근거가 제시돼야 함은 물론이다. 무장한 600명의 북한 병력이 반도의 남단인 광주에 내려와 수일간 시민들을 선동하고 진압군과 교전까지 벌인 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철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들이 축지법에 능하고 도술까지 부린다는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는 얘기다. 신출귀몰의 홍길동이 소설에서 튀어나와 그들을 지휘한 후 구름에 태워 율도국으로 날아갔다는 식으로, 기승전결의 구색이라도 갖춘 후 떠들어야 누군가 귀라도 기울인다. 왜 진압군의 총검은 수백명의 북한군이 앞장을 섰다는 대열에서 시민들만을 골라 살상했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 수차에 걸쳐 이 주장을 근거 없는 망상으로 판결한 것은 철저하게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접할 때마다 12·12 쿠데타의 한 지점이 떠오른다. 전방 사단이 쿠데타군으로 돌변해 서울로 출동한 사이 휴전선에 생겼을 공백 말이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여기서부터 창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틈을 타 북한군 대대병력이 침투해 유유히 남하해서는 지리산 쯤에 잠복하면서 광주 폭동을 기획하고 책동했다는 그림이 그럴 듯해지지 않는가.

그래도 가시지 않는 의문은 북한군 대대 병력이 광주시를 제집 안방처럼 종횡무진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동안 그곳을 에워싸고 있었던 진압군은 왜 낌새조차 채지 못했느냐는 점이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무능한 군대는 없었다. 이렇게 군의 명예에 먹칠한 당시 광주의 군 지휘관들은 징계는커녕 훈장과 승진 세례를 받있다. 광주항쟁의 각색은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사실로 인정해야 가능해진다. 따라서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 참석해 환호작약 했던 분들은 당시 군권을 장악했던 `영웅'이자 `민주주의의 아버지'에게 물어야 한다. 도대체 당신이 광주에서 마주했다는 북한군은 귀신들이었느냐고. 혹시 그들과 공모했던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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