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만찬
거리의 만찬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9.02.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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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삼겹살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치킨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집밥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만찬의 차림새는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낯선 것은 되레 거리였습니다. 뭔가 휑한 느낌이 차가운 바람의 모양으로 훅 들어왔다 빠질 때도 있고, 표정없는 사람들이 흔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런 거리였습니다.

만찬을 나누기 전에, 거리는 함께 고민해야 할 여러 의제를 곁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였고, “할 말 있는 당신과 다시, 듣다”인 적도 있었고, “새우잠을 자면서도 고래꿈을 꾼다”는 날도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3D(더럽고 위험하며 어려운)”의 현장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홈리스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행되는 잡지 `빅이슈(BIG ISSUE)'를 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거리는 잔뜩 얽힌 실타래 같기도 했고, 졸지에 코가 잘려나간 사람처럼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해마다 산업재해 사망자가 1,700명이 넘는다는 거리에선 식사 시간이 따로 없던 청년 김용균이 먹지 못해 남긴 컵라면과 과자가 유품이 되었습니다. 광화문역 5번 출구 거리에는 빅이슈 판매원 서명진 씨가 목 놓아 불렀던 언젠가는 날고 싶다는 `비상(임재범 노래)'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었습니다.

고된 하루의 해가 저물 때 이웃과 손님을 청하여 함께 밥을 먹고 싶어도, 낯선 거리가 억센 샅바를 늦추는 법은 드물었습니다.

누가 억울하게 다치거나 죽어도 숨기거나 나 몰라라 했습니다.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존중 받고 대접받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였습니다. 홈리스의 신발을 버리기 위해 항상 미소를 짓고, 술과 담배까지 끊으며 어렵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만의 잘못은 분명 아닐 겁니다. 기계는 잘도 돌아가는데, 사람은 누가 어루만져 줄 것인가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사회를 어찌할까요?

이 땅의 또 다른 청년 정경선의 말이 공허한 울림은 아닐 겁니다.

“한국은 지나치게 많은 상황에서 `다수의 행복'이라는 명목으로 충분한 합의 없이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해왔고, 약자들의 편에 서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일로 산통을 깬다'고 손가락질을 해왔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의 논의를 통해,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한 성장은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행복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당신은 체인지메이커입니까? 중에서)

청년 김용균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김미숙 씨가 거리에서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사회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도 어두운 면을 좀 보고, 사회를 바꿔보자고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서 우리나라가 좀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목소리조차도 못 내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인식을 갖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시사 현장을 찾아가 우리 이웃들의 속내를 듣는 TV 시사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이 내놓고 있는 식탁이 공감과 실천의 입맛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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