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교훈
히말라야의 교훈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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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작년에 이어 올해도 히말라야트래킹을 다녀왔다. 올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코스였다. 작년의 마르디히말 코스는 산등성이를 따라 뻥 뚫린 히말라야의 하늘에 매달려 쉼 없이 오르는 길이었다면, 올해의 안나푸르나 코스는 계곡의 바닥에서부터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며 히말라야의 속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와 청량한 공기, 빙하가 녹아내려 푹 폐어버린 채 황량하게 드러난 빙하의 잔해, 마애불처럼 산등성이 바위에 자연이 새겨놓은 부처님의 모습, 멀리서 흘러내리는 눈사태의 장관, 깎아지른 산허리에 기대어 절벽에 매달린 듯 계단식으로 형성된 마을의 풍광은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그 환상의 풍광 속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 일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코스의 진정한 맛이다.

눈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같은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것은 마치 인간세상을 떠나 선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이렇게 히말라야의 산들에 매료되어 히말라야의 모든 트래킹코스를 완주하리라, 아니 최소한 안나푸르나와 랑탕,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르는 가장 유명한 코스만이라도 꼭 다녀오리라 다짐한 것이 작년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에서였다.

1년을 기다린 끝에 지난 1월 12일, `2019년 히말라야 기후탐사대'의 일원으로 카투만두 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날 국내선 비행기로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로 이동한 후 본격적인 트래킹을 위해 해발 1920미터에 자리한 간드룩(GHANDRUK)까지 짚 차로 이동했다. 40여키로 미터의 비포장 산길을 짚 차로 이동하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덜컹거림으로 인한 차멀미로 간드룩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걷기 첫날의 코스는 간드룩에서 해발 2170미터인 촘롱(Chhomrong)까지 8키로 미터 구간이었다. 그런데 이 길은 계곡의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마의 구간이었다. 촘롱의 롯지에 들어설 때 이미 나의 체력은 고갈된 상태였다. 후회가 밀려왔다. 작년에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경험을 믿었기에 이번 등반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었다. 최소한 몇 달 전부터라도 걷기와 산행으로 체력 향상을 위해 준비운동을 했어야 했다. 해야지 하는 마음만 먹다가 결국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교만한 마음으로 덤빈 것이 화근이었다.

나의 체력상태로는 더 이상의 등반은 무리였다. 그리고 다른 대원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장에게 다른 대원들이 등반을 마치고 하산할 때까지 나는 이 롯지에 머물러 있겠노라고 통보했다. 대장은 자고 일어나서 내일아침에 결정하자며 즉답을 주지 않았다. 그날 밤 대원 한 사람이 비약이라며 건네준 약 한 봉지를 먹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거짓말처럼 몸이 거뜬해졌다. 그래서 하루만 더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일행을 따라 나섰다. 14명의 대원 중 네 사람이 나와 속도를 맞춰 걷겠노라며 후발대를 자원했다. 그렇게 이틀째 걷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기침이 시작되었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의 기침은 더욱 심해져 밤엔 잠을 잘 못잘 정도로 기침과 가래가 잦아졌다. 삼일 째는 몸이 면역력을 잃어서인지 고산증까지 겹쳤다. 그래도 후발대 아우들의 정성어린 응원과 보살핌 덕에 눈보라를 뚫고 해발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는 유명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우리지역의 여성 산악인 지현옥 대장의 추모비가 서있다. 그리고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를 개척하다가 산화한 직지원정대 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추모비도 서있다.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 바친 그들을 진심으로 추모했다.

하산 길에는 기침은 더욱 심해졌다. 밤에 잠을 이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것저것 약을 챙겨먹은 탁인지 입맛도 없고 소화도 되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응급실로 직행했고,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짐도 풀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큰 교훈을 주었다. 아무리 익숙하고 작은 일이라도 준비 없이 행하는 일의 결말을 보여준 것이다. 주위에서는 다시는 히말라야라는 말조차 꺼내지 말라고 하지만, 올해는 철저히 준비해서 내년 1월에 다시 히말라야에 오르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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