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이미자
포항의 이미자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2.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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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비가 많이 와도 서울에서 와야 한다? 눈이 크게 와도 서울에서 와야 한다? 지진이 나도 서울에서 나야 한다?

충청지역에 눈이 크게 온 적이 있다. 2004년 3월 5일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천안과 청주를 통과하니 고속도로 위에서 난리가 났다. 1만여 명이 하루를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헬기로 식수와 간식을 떨어뜨려 주기도 했다. 10여 킬로지만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박사급연구원들이랑 공부하다가 눈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막걸리나 먹자고 학교 뒤편에서 오후를 보냈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던 소나무가 바로 그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말 그대로 양쪽으로 반으로 쩍 갈라지는 재앙을 맞았으니 얼마나 눈이 많이 왔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교정 안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같이 술을 마시던 한 사람은 집에 가야 한다면서 저녁 무렵 나섰지만 결국 노숙자가 되었다. 술이나 함께 마실걸.

청주지역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다. 2017년 7월 16일 오전이었다. 200mm가 넘었으니, 그것도 아침나절 한 시간 동안 100mm 정도를 내리 부었으니 어떤 상황인 줄 짐작이 갈 것이다. 대학원생들과 공부모임이 있어 나가는데 이게 웬일, 큰길도 물에 잠겨 있어 조금이나마 높은 샛길로 학교에 갔는데, 학교 안 학생회관 앞길에는 이미 차 한 대가 빠져 있었다. 힘들게 몇 년 동안 저류조를 만들어놓은 정문도 침수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작은 하천은 범람하였지만, 비가 일찍 그치는 바람에 다행히 청주를 가로지르는 무심천은 최고수위에서 멈춰버렸다. 일요일 아침, 곳곳에 세워놓은 자동차는 많이 물에 빠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걱정하며 전화가 온 곳은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사는 교수였다. 서울은 서울이 아니면 관심이 없지만, 서울이 아닌 곳은 서울이 아닌 모든 곳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된 국가적인 재난이다. 지진이 많은 경주 쪽과 가까운 곳이고, 원자력발전소도 근처에 있어 걱정이 되는 곳이다. 경주에 이어 큰 지진이 난 것이기에 무슨 조짐인가 싶어 걱정도 많다. 특히 그 원인에 대해서 논란이 크다. 지열발전소 건설로 땅에 물을 넣고 빼다 보니 지반이 흔들렸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재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뾰족한 해결책은 안 보인다. 수능시험 날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교육과정평가원이 이제는 지진을 대비해 문제를 두 질씩 준비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 포항지진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가수 이미자다. 1년이 지나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엘레지의 여왕께서 포항에서 자선공연을 벌였다. 지나친 감상인지, 이런 재해에 관심을 놓지 않은 전국적인 인물은 우리 여왕님밖에는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서울에 비가, 눈이, 땅이 그렇게 큰일을 벌였어도 이렇게 무난하게 지나갈까? 산사태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벌이는 것이 서울지방의 자치단체인데, 서울 이외 지역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작은 것인가?

만일 인구 수나 경제력으로 이를 변명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나쁜'사고다. 다섯을 죽이느니 하나를 죽이겠다는, 돈을 많이 버는 한 사람을 위해서 돈을 벌지 못하는 다섯을 죽이겠다는.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제 그만 지방방송 끄시고요.'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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