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떡국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1.3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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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날이 차다.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만 분주하다. 그제 해다 놓은 가래떡이나 썰어야겠다.

떡국은 가장 한국적인, 한국에만 있는 음식인 것 같다. 떡국을 끓이기 위해 사골을 고아야 하고 만두를 빚어야 한다. 쇠고기를 다져 꾸미를 만들고 계란은 노른자 흰자 따로 부처 낸다. 세상에 우리 말고 떡국을 먹는 민족이 또 있을까. 금방 뽑아낸 쫄깃하고 말랑한 가래떡은 명절 밑에 먹어야 맛있다. 맛있게 먹어 줄 사람이 있을 때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신이 난다.

가래떡을 썰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우리 어머님은 늘 불은 떡국을 잡수셨다. 차례 지내고 나면 떡국이 불어 있다. 남들 다 밀어내는 불은 떡국을 어머님은 물렁물렁해서 좋다고 하시며 맛있게 드셨다. 떡국을 먹을 때면 어머님 생각이 난다.

나는 외며느리다. 어머님 생전에 명절 음식을 만들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집안이야기, 동네 사람들이야기. 부엌에서 일하다 보면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다리가 뻐근하도록 서 있었다. 사촌서방님들이 만두를 좋아하시니 많이 하라고 하셨다. 몇백 개의 만두를 빚고 서너 개의 채반을 채우는 전을 부쳐야 했다. 삼십여 명이 모이는 명절이면 집 안팎이 시끌벅적했다. 그때는 힘이 들어서 좋은지 몰랐다. 그때가 그리운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시누님들은 각자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우리 집으로 모인다. 사 남매 어느 집안 형제들보다 우애가 깊다. 모이기만하면 웃음소리로 집안이 떠들썩하다. 어머님, 아버님 생전에도 우리를 지켜보시며 “재들은 만나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밤새 깔깔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처음부터 형제애가 돈독했던 것은 아니다. 30여 년 전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다. 친정과 시댁의 정서가 많이 다르다 보니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그리고 내가 사근사근하거나 말랑말랑한 성격이 못되다 보니 시누님들이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인사치레는 꼬박꼬박 하는데 말을 잘 안 하니까 딱히 꼬집을 건 없는데 왠지 불편했단다. 이때다 싶어서 그간 서운했던 일들을 조근조근 꺼냈다. 시누이 셋에 혼자이다 보니 나는 늘 물에 뜬 기름이었다. 나도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는 어른들한테 잘하면 내 도리는 다하는 거로 생각했다. 시집간 딸로서 친정 부모님이 며느리와 잘 지내면 그것으로 고마워할 줄 알았다. 그동안 쌓였던 봇물이 다 터졌다. 나도 울고 시누이들도 울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갔다. 서로 너무 몰랐다며 마무리를 잘했다. 서운한 일은 있을 수 있다. 형제는 그런 것이다. 나도 친정에 가면 시누이다. 시집와 먹은 떡국이 어느새 서른여섯 그릇이다.

설날에는 왜 반드시 떡국을 먹어야 할까. 육당 최남선 선생님은 떡국이 먼 옛날부터 제사를 지낸 후 복을 빌며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떡국을 먹으며 한 해 건강과 풍요의 꿈을 다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은 명절 흉내만 내는 것 같아 쓸쓸하다. 식구도 없으니 음식장만도 소홀해진다. 철없던 시절엔 단촐하고, 조용하고, 편안한 게 좋았다. 두 번째 서른을 살아보니 일가친척이든 이웃이든 함께해야 즐겁다. 며느리가 보내온 사골 한 솥 우려내야겠다. 정월 초하루는 천지 만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떡국을 먹는 날이다. 명절에는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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