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빈 둥지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1.3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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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햇살 부서지는 창틀에 기대선다. 미세먼지로 흐릿한 나날이 연속이더니만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찾을 길 없고 높은 하늘엔 군데군데 솜뭉치 같은 구름만 떠돈다. 축 늘어진 뱀처럼 소파에 벌렁 누워 리모컨 돌리기에 숨 가쁜 아이, 헤드폰을 쓰고 게임전쟁을 치르며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맥없이 침대에서 실눈 뜨고 TV와 사투를 벌이는 나, 발치에 꾸벅거리는 고양이도 한 몫 더하는 한 지붕 아래 나른하고 질펀한 휴일풍경이다. 나무늘보 같은 생활에 젖어들어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 어느 날부터 허기가지고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슬픈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아 목이 마르다. 모두가 있음에도 황무지 같은 공간, 빈 둥지처럼 바람만이 휑하니 부는 집안공기 대화의 물꼬를 트지도 못하고 허전함을 찻잔에 녹이며 자꾸만 독립된 구석을 찾는다. 비워지는 찻잔에 알 수 없는 고독이 밀려온다. 군종 속에 외로움이라 했던가. 모두가 바쁜데 개밥에 도토리처럼 우두커니 선 채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 저편의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식이 대여섯 명 이상인 부모님세대. 큰방엔 여러 형제가 작은방엔 아기와 부모님이 생활하던 예전, 한 이불 속에서 살 비비고 다투면서 배려와 양보는 물론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는 독립심을 키웠다. 흥부네 가족처럼 우리 형제들도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습득했다. 둘째인 난 부모님의 귀여움을 차지하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들은 아들이어서 사랑을 독차지했고, 맏딸은 장녀로서 셋째 딸은 선도 보지 않고 데려갈 정도로 어여쁘다는 이유로, 막내딸은 막내로 귀여움 덩어리였다. 둘째인 난 언니의 모든 것을 물려받아야 했고 위, 아래로 중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였다. 질투심과 경쟁심이 싹트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언니, 동생들보다 탁월해야만 했기에 남달랐던 것 같다. 빙 둘러앉은 밥상엔 어른들이 수저 들기까지 기다리며 부모님 옆에 앉으려 했고,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막냇동생을 둘러업고 일 나가신 부모님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자청한 집안청소도 언제나 내 몫이었다. 집안일보조와 동생 돌봄 그것이 인내라는 것을 양보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저 당연하다 여겼는데, 오늘 늘어진 식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쾌한 기분이 솟구쳐 오른다.

그날 오후, 손주가 사립초등학교를 다닌다는 동우회원을 만났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룹과외로 돌다 보니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고 늘 학업에 매달려 있는 손주. 또래 어울림보다는 언제나 경쟁 속에 붕우가 아닌 적과의 동침이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고 있단다. 명석한 두뇌와 현명한 아이로 학습에 우수하게 자라고 있지만 사회성이 부족하여 교우관계가 어렵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면서 끼리끼리만 지내려고 한단다. 또한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고집이 세며 감정조절이 어려워 어른이 아이의 눈치를 보는 아이러니한 입장이란다. 어디 아이들뿐이겠는가. 수능생, 취준생, 공시생 모두가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부모는 어린아이에게도 머리 큰 자녀에게도 그리고 부모부양을 하면서 눈치를 본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굳이 물어보고 따질 필요도 없는 세상,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독립된 생활은 점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주택 공간 자체도 단독보다는 아파트라는 사각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음조차 사각지대에 몰려 정서가 말라버린 나무껍질 같다.

하루를 접고 둥지를 찾아들어도 각자 생활에 편리를 추구하다 보니 나를 맞이하는 건 고요 속에 애완고양이뿐이다. 모두가 한 공간에 있음에도 대화가 없으니 뻥 뚫린 허공에 고독한 바람이 분다. 빈 둥지 증후군일까. 달려온 거리만큼 주렁주렁 매단 주름 앞에 유독 쓴 커피. 한 지붕 아래 씁쓸한 강물이 흐르지만 서로의 마음이 동하길 기대하면서 애정이란 조각배를 슬며시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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