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존중받는 시대를 꿈꾸며
경력이 존중받는 시대를 꿈꾸며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01.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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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조개수프로 유명한 식품회사가 있었다. 이 식품회사는 4층 건물 높이의 조개수프 탱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맛은 물론 영향력 면에서도 탁월했다. 그 회사의 조개수프가 수십 년째 한결같은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수프의 맛을 예민하게 감별해내는 공장장 덕분이었다. 공장장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회사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공장장의 예민한 감식안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전통적 방식은 아마도 이러할 것이다. 그 공장장이 입맛이 예민한 몇몇의 문하생을 들여 자신이 맛을 익혀온 방식을 다양한 시범과 실습 등의 학습과정을 통해 전수하는 것이다. 시간도 많이 들고 문하생은 그 어려운 공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운이 좋다면 청출어람으로 선생이었던 공장장의 입맛을 뛰어넘는 수제자도 나올 법한 방법이다.

또 다른 현대적 방식도 있다. 공장장의 감식안을 세밀하게 쪼개어 표준화한 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이수하면 조개수프 감식사의 자격을 주는 것이다. 누가 가르치든, 누가 배우든 비슷한 수준의 감식안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식품회사의 사장이라면 나는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작년 말 독일의 베스트팔렌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교사 네 명 중 세 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세 가지 원인을 들고 있는데 첫 번째 원인은 모욕, 따돌림, 학생들의 배려 없는 행동, 학부모의 민원 등 감정노동으로 인한 교사의 스트레스 증가이다. 두 번째는 연금 실수령액이 명예퇴직 시 더 유리하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높은 여교사 비율인데, 이는 우리와 달리 시간제 근무가 많은 독일의 여교사들은 정년까지의 근무 여부가 연금 수령액에 미치는 영향이 낮아 명예퇴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시 최근 명예퇴직 신청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에 제한되기는 했지만 명예퇴직의 원인을 심층 연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사의 명예퇴직 사유는 독일과 달랐다. 물론 독일에서 지적한 스트레스와 연금 등의 요인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평교사로 헌신하는 교사를 무능한 교사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연구자는 고경력 교사가 가진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 교사들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학교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연구를 읽으면서 조개수프의 감식안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업은 다양한 변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은 비가 오면 아이들의 마음 상태가 달라진다고도 한다. 배우는 사람이 누구냐, 누가 가르치느냐, 어떤 내용을 공부하느냐, 어떤 방법으로 배우느냐 등등 다양한 요인이 수업에 예민하게 작용하기에 가장 좋은 수업의 맛을 감지하는 감식안은 하루아침에 길러지기 어렵다. 적정비용을 지불하고 그럭저럭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선에서 맛을 해결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라면 수업의 표준화 접근은 매우 효율적이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수업의 맛, 수업이 내는 최고의 맛이 목적이라면 수업의 표준화 접근은 답이 될 수 없다.

좋은 수업의 맛을 아는 선생님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좋은 수업을 맛보고, 좋은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시범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소화시키는 과정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양성대학의 4년은 어떻게 해도 부족하다. 그러하기에 연구자가 밝힌 학교 내 교류 문화, 특히 교사의 경력을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는 참 소중해 보인다. 경력을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기대해 본다. 양성대학은 교사를 낳을 뿐 훌륭한 교사를 기르는 8할은 학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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