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소나무
부러진 소나무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9.01.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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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벗 삼아 걷는 산책길에 낯익은 소나무가 부러졌다. 솔가지는 꺾어지고 등은 부러지고 만 것이었다. 어느 해 늦겨울로 치달을 무렵 눈이 내렸다. 펑펑 쏟아졌다. 박선배와 같이 걷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박선배는 문득 모든 사물은 거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역설적인 시비가 스쳐갔다. 부러진 소나무와 그 말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가 눈의 탓일까? 소나무의 탓일까? 아닌게아니라 여느 때의 눈과는 달리 두툼하게 물기를 머금은 눈은 죽치듯 주저앉아 온 세상을 누르듯 뒤덮고 있었다. 산에도 들에도 거리에도 모두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어느 것도 가리지 않았다. 많은 나무가 상처를 입었다. 그중에 소나무의 상처가 더욱 깊었다. 민서는 늘 푸른 소나무를 좋아했다. 어느 시 구절의 말대로 독야청청하리라는 고고한 듯한 자태와 솔잎의 도도한 듯한 인상이 그 멋을 더했다. 그것 말고도 많은 예찬이 또한 그러했다. 그런 연유로 그 소나무를 볼 때마다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던 것이었다. 하지만 설마 이 눈을 맞고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모든 나무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무렵 그와 달리 한 켠에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느티나무였다. 한여름엔 햇살 한 줌 통과하기 어려우리만큼 무성하던 느티나무는 아무런 불편도 없는 듯 당당하게 보였다. 느티는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몰려와 송두리째 흔들어도 온몸으로 젖은 채 부딪치며 그들을 보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한 잎 한 잎 곱게 물들다가 어느 날 바람결에 그 많던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떠나보냈다. 나뭇잎이 떠난 가지에 아무리 가늘고 여리다 해도 실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았다. 아마 모든 것을 벗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저 소나무는 저리 처참한 몰골을 하게 되었을까? 언제나 푸른 상록수도 좋고 선비들이 비유하듯 변함없는 절개와 지조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때론 욕심에 의한 집착과 뾰족한 자존심의 콧대 같은 고집처럼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한 솔 한 솔 옷을 벗어 묵은 솔은 내어주고 새 솔은 빈자리에 여유 있게 두었다면 저렇게 부러지는 일은 없었으리라 여겨 보았다. 누구나 소유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지 않은 생명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욕망에 무리가 따를 때 이롭지 못하거나 화를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민서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양면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아 왔다. 시간이 갈수록 솔잎에 앉은 눈들은 쌓여만 가고 축 쳐진 가지는 늘어져만 가는데 눈은 가도 가도 그칠 줄 몰랐다.

모든 사물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다. 양면의 실상에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시각이나 색깔을 말할 수도 있다. 그 속에는 겉과 속이 다른 명암의 여부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양면의 공존을 얘기할 수 있다. 설령 푸른 욕망이 설득력을 갖는다 해도 그에 걸 맞는 양보가 따라야 하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자칫 더 큰 희생과 상실이 요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잃은 욕망이 푸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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