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킴 연습
삼킴 연습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01.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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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바로 119에 연락을 해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으로 막힌 혈전을 제거했다. 덕분에 심각한 신경 손상을 막을 수 있었지만, 가슴 사진에서 결핵이 의심되는 소견이 추가로 발견되고, 아니라는 검사 결과를 받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가장 중요한 초기재활 치료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급성폐렴의 위험성이 생겨서 콧줄을 끼워 식사하게 되었다.

지난번 뵈러 갔던 날, 병상을 등지고 급하게 점심을 먹는 엄마를 봤다. “나 군고구마 요만큼만 갖다 줘봐.” 어느 날은 `말랑말랑한 빵 한 조각', 또 어떤 날은 `쪼그맣게 잘라서 사과 한 조각만' 하며 어린애처럼 보채는 아버지한테 미안해서 항상 이렇게 얼른 먹고 치워버린다는 것이다. 두 분 다 안쓰러워 마음이 짠했다. 뼈만 남아 부서질 것 같은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다가 순간 울컥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아버지 등 뒤로 돌아섰는데, 열두 살 어린 딸을 둘러업었던 넓은 등은 어디로 간 걸까. 너무나 앙상해진 아버지의 등을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동안 쓸어내렸다.

입원한 지 달포 만에,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재활 치료가 시작되었다. 운동 치료와 굳어버린 목 근육에 전기 자극을 주고, 여러 가지 조작을 따라 하게 하여 혀 근육을 풀어주는 연하 치료를 병행한다. 매일 치료를 받고 나면 기진맥진 힘들어해도, 다행히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요즘은 약간만 도와주면 보행기를 잡고 혼자 화장실도 가고, 발음도 훨씬 좋아져서 필담(筆談)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기분이 많이 밝아져서 웃는 얼굴로 병문안 오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곤 한단다. 이제는 마음을 놔도 될 것 같다.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삼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 음식을 씹어 삼키면 저절로 위로 내려가는 건 줄 알았는데, 인두와 식도가 순서에 딱 맞춰 수축과 이완을 하며 밀어줘야 음식물이 위장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 근육들이 굳어져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아버지처럼 `삼킴 장애'가 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삼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감사한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병원을 드나드는 사이 어느새 해가 바뀌어 있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습관처럼 신년계획 노트에 적곤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노트를 펼쳐 기해년 황금돼지해의 목표를 적어본다. 올해의 목표는 `삼킴 연습'이다. 쓴소리들을 생각 속 깊은 곳까지 확실하게 밀어 넣는 연습, 부지불식간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들을 생각의 방으로 도로 삼키는 연습, 곧 마음 근육의 재활 치료를 해 볼 생각이다.

언제부턴가 현재의 편안함을 방해하는 것을 생각 속으로 삼키려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일이나 당장에 기분 좋은 자극들에만 마음을 좇으며 살고 있었다. 영혼을 살찌게 할 깊은 사유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복잡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턴 내 안과 밖으로부터 오는 숙제들을 거부하지 않고 들여다보기로 했다. 더불어 나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들이 생각을 거쳐 표출되도록 늘 깨어 있으려 한다.

이미 안락함에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는 어쩌면 어려운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이건 열심히 `삼킴 연습'을 하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내 간절한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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