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권력
우상과 권력
  •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 승인 2019.01.2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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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실장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1919년 임시정부가 공화제를 채택하기 이전 나라의 주인은 왕이었다. 반면 고려를 문벌귀족사회로, 조선을 양반관료제사회라 부르는 이유는 실제 나라의 운영 주체를 귀족과 양반으로 봤기 때문이다.

왕과 귀족, 양반이 다스리는 나라, 그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하지만 속내는 왕과 지배층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다. 역사에서 피지배층은 수취의 대상으로, 혹은 반란 같은 철저한 응징의 대상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조선시대 왕권이 신권을 제압한 때는 태종, 세조, 연산군 정도였다. 당연히 신하들이 기록한 이들 왕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없다. 특히 붕당정치가 실현되면서 권력의 중심은 신하, 양반관료들에게 급격히 옮겨갔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왕위계승마저 신하들의 의중이 반영될 정도였으니, 양반의 나라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반면 숙종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46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숙종은 선대 왕과 달리 왕권을 회복하려고 골몰했다. 그리하여 집권세력을 교체하는 환국(換局)정치를 통해 정국을 주도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경신환국(남인→서인), 기사환국(서인→남인), 갑술환국(남인→노론), 그리고 크고 작은 사화를 통해 신권을 제어하려 했다.

1689년 기사환국은 희빈장씨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는 데 반대한 서인, 특히 우암을 제주로 위리안치 시키고, 급기야 불러들여 정읍에서 사사한 사건이다. 당연히 서인은 몰락하고 남인이 권력을 장악했다. 이미 역관 소생인 희빈장씨의 배후에 남인이 있었다. 하지만 남인 정권도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후일 연잉군(영조)을 낳은 숙빈최씨를 총애한 숙종과 절치부심한 외척과 노론의 이해가 일치하면서 다시 환국이 발생했다.

1694년 보복의 광풍과 함께 죽은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뒤따랐다. 우암의 족적 하나하나를 찾아 기억과 추념의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기념비와 서원의 건립이다. 갑술환국 직후 우암의 초장지인 수원 만의(화성시 매송면 천천리)에 매곡서원을 세우고(1695년 사액), 사약을 받은 정읍에 고암서원(1695년 사액), 충주목사로 임명된 인연으로 충주에 누암서원(1702년 사액), 이듬해 문정(文正)이라 시호를 내리고 첫 유배지인 덕원에 용진서원(1696년 사액), 청주 화양서원(1696년 사액)을 세웠다. 1696년 사림의 종주로 추앙받던 조광조를 모신 도봉서원에 병향하였고, 1697년 회덕 흥농영당, 옥천 용문영당 등 한을 풀 듯 곳곳에 서원과 영당을 세워 그를 되살렸다. 서원과 사우 건립은 1973년 충주 경양사 등 20세기까지 계속됐다.

우암의 위상은 죽은 뒤에 오히려 위력을 드러냈다. 노론은 죽은 우암을 당쟁의 전면에 내세웠다. 우암은 향전(鄕戰)이라 불리는 지역 패권 다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경상도는 남인의 본향이었다. 비록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몰락하였지만, 경상좌도의 퇴계학파와 우도의 남명학파가 여전히 온존하였다. 우암은 생전 스승 정인홍을 논박하고 갈라선 정온(鄭蘊)을 극찬했고, 남명 조식의 애제자였던 정인홍이 인조반정으로 처형된 후 위축된 남명 문하의 갈등에 개입해 향론을 주도했다. 조식의 신도비를 우암이 쓰게 된 연유이며, 경상우도에 노론이 자리잡게 된 계기였다.

한편 경주는 조선 후기 감영이 대구로 옮겨가기 전까지 경상도를 대표하는 고을이었다. 물론 조선 후기에도 도 명칭의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위상은 그대로였는데, 이곳 경주의 신흥 노론세력과 노론계 경주부윤은 죽은 우암의 명성을 통해 자파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1719년(숙종 45) 연고가 전혀 없던 우암의 초상을 모신 인산영당을 세웠다. 소론이 집권한 1722년(경종 2) 헐렸지만, 영조 즉위 후 훼철 주동자를 처벌하고 서원으로 승격, 재건했다. 인산서원은 1764년 사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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