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 성, 중세에 머물다
두브로브니크 성, 중세에 머물다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9.01.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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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그림 속 풍경을 펼쳐 놓았나. 파란색 바다와 붉은색 지붕들, 청명한 하늘에 흰 구름까지 잘 어우러져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났다. 크로아티아 땅 남쪽에 있는 두브로브니크 성, 13세기경 바닷가 절벽 위에 성을 축조하였다 한다. 두께 3미터, 높이 25미터에 둘레가 2킬로미터나 되는 성벽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성벽을 포함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성벽 탓일까. 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성내에 구시가지는 다양한 고딕양식의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궁전, 수도원, 성당, 학교뿐 아니라 항구와 접하는 세관으로 쓰던 건물, 수 십리 밖에서 수로를 연결해 만들었다는 우물 등 로마시대 유적들 앞에 서있자니 마치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 여겨졌다.

시간이 정지된 듯했다. 건물이나 성벽에는 외세의 침입을 몸으로 지켜온 모습이 역력했다. 지진과 내전으로 건물이 많이 붕괴하였다지만 긴 세월동안 유네스코와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복원에 힘써, 현재는 보수를 거의 마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가 이리도 아름다울까. 세월의 깊이만큼 오래된 빛바랜 기와지붕과 달리, 산뜻한 주황색을 띠는 집들은 보수한 건물인듯하다. 퇴색된 지붕들과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지붕은 없고 무너져 내리다가 만 벽도 그대로 보존되어 눈길을 끌었다. 곳곳에는 총탄의 흔적들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참혹했던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 보수를 하지 않고 보존한다 하니 상흔마저 소중하게 보였다.

성벽 길을 걷다 보니 또 다른 두브로브니크 와 조우하게 되었다. 주택들 일 층은 대부분 상가이고 이삼 층에는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오래된 창틀 너머로 간간이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분들이 놓여 있고 창밖에 가지런히 널린 빨래가 바람에 살랑대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느 집 거실에서는 아이가 재롱을 떨고 있지 않을까.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으리라. 그들의 삶도 이제는 평화롭게만 보여 전쟁의 흔적으로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수르지산이 병풍처럼 성을 호위하고 있었다. 가파른 산길에 차 한 대 간신히 지날 만큼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우리 일행을 실은 차는 곡예를 하듯이 올라갔다. 흘깃 창밖을 보니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 칠까 봐 아찔했다.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바닷가 성벽 길과 오래된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곳곳에 요새에는 지금도 누군가 성을 지키기 위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과거 무역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항구에는 요트들과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성벽과 마주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장엄한 성벽이 버티고 있었다. 성을 빼앗으려는 외부 침략을 막느라 사투를 벌였을 수많은 사람들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철옹성 같은 성벽을 쌓고, 지켜내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브로브니크 성, 중세시대 찬란한 문화유적 속에 흠뻑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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