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원천리(不遠千里)
불원천리(不遠千里)
  • 방석영 시인
  • 승인 2019.01.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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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시인
방석영 시인

 

불원천리(不遠千里)라는 말이 있다. 천리가 멀지 않다는 의미다.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천 리 밖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멀리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만사 제쳐놓고 한걸음에 달려가게 된다. 바로 불원천리(不遠千里)의 마음 때문이다.

지척천리(咫尺千里)라는 말도 있다. 지척의 아주 가까운 거리가 천 리처럼 멀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보기 싫은 사람이 집 앞에까지 찾아 와서 만나자고 하면, 갑자기 몸이 아파 오는 등 외출하기 곤란한 상황들이 저절로 생겨난다. 바로 지척천리(咫尺千里)의 마음 때문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만을 비교한다면 어떤가? 천 리는 멀고, 지척은 당연히 가깝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가 우리 마음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천변만화하기 때문에, 마누라가 예쁠 때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 그러나 마누라가 미워지면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어색해진다.

가깝고 멀고, 친하고 소원하고를 결정짓는 것은 지척 및 천 리 등의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또한 마누라나 말뚝 등의 대상 자체가 아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이 멀고 가깝고, 절을 하고 말고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멀고 가까움, 친하고 소원함 뿐만이 아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멀고 가깝고, 친하고 소원함 등은 고정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지어낸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선입견에도 물들지 않은 채, 대소유무와 원근친소 및 고저장단 등 양변(兩邊)을 여읜 텅 빈 무심이라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소유무와 원근친소 및 고저장단 등을 자유자재로 선용하게 된다. 바로 흐르는 물처럼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창조적 삶을 살게 된다. 매 순간 과거의 기억 뭉치에 똬리를 튼 주의 및 주장 등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상황 상황에 맞게 가장 적합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0점 조정된 마음으로 바른 생각과 바른말과 바른 행동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따로 기어 변속을 하지 않는 오토매틱 자동차처럼 절로 절로의 삶이 살아지게 된다. 애써 작위적인 생각과 행위들을 하지 않는, `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살게 된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키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삶, 자신의 주견을 텅 비우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서 성령의 도구로 온전히 쓰이는 삶, 하늘의 뜻을 따르는 순천(順天)의 삶을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은 삶이야말로 2044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상원갑자 시대, 즉 인공지능 로봇의 상용화에 따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될 인류가 지향하고 구현해 내야 할 삶이다.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마음을 회복하지 못한 채, 공동선을 외면하는 삶,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삶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추방돼야만 한다. 그래야만 맑고 밝은 투명한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로운 상원갑자 시대의 유토피아, 다 함께 행복한 지상천국과 지상극락, 무릉도원인 대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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