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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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1.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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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서울 중심적 사고에 대해 글을 쓰려했는데, 제목에서조차 서울이 나와 지방으로 바꿔놓고 쓰기로 하자. 왜냐? 사전적으로는 서울도 지방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있다. `서울지방법원', `서울지방검찰청', `서울지방병무청',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지방조달청', `서울지방항공청',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서울지방변호사회'등등. 이래도 서울이 지방이 아니란 말인가?

국가적 정의에 따르면 모든 곳은 지방이고 지방의 하나가 서울일 뿐이다. 충북대가 충북지방국립대학이라면, 서울대는 서울지방국립대학이다. 그런데 지방대라는 말이 일상화된 오늘이다. 서울이 포함된 개개의 지방이 아니라, 서울만 따로 떨어진 나머지 지방들이다. 다시 말해, 서울 이외의 곳은 모두 지방이고, 지방을 모두 제외해도 서울만은 남는 이상한 표현이다.

만일 서울과 지방이라는 분법에 맞는 표현을 찾는다면 그것은 의당 `경향'(京鄕)이 되어야 한다. `경향각지에서 참여해주신'이라고 할 때의 `경향', `경향신문'이라고 할 때의 `경향'이다. 결국 `지방대학'이라는 말은 `향촌대학'의 잘못된 표현이거나 높임말이 되어버리고 만다.

과연 언론은 어떤 시각에서 `지방'이라는 말을 쓰고 있을까? `각각의 지방'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서울 이외의 전지역'에 가깝지 않을까? 설이나 추석에 쓰는 `귀향', `귀경'이라는 뜻처럼 대한민국은 서울과 지방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주요국립대학의 연합체는 `지역'이라는 말도 모자라 `지역거점'이라는 말을 쓴다. 지역거점국립대학인데, 줄여서 `거국련'이라고 한다. `지역' 떼고 `국립'떼고, `거점'과 `대학'만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이런 현상은 곧 지방의 시련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지방'과 `중앙'의 이분법이자 이원화다.

전통적 용법에도 없는 이상한 표현이다. 대신 그 안에는 중앙의 폭력성, 권력집중, 아집이 들어간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나는 서울 쥐고 너는 시골 쥐다. 나는 주장하고 너는 순종한다.

달리 말하면, 서울 중심적 사고는 곧 자본주의적 사고와 직결된다. 사람이 모여야 돈이 된다. 사람이 모여야 인건비가 싸지고, 사람이 모여야 대량으로 팔고, 사람이 모여야 유행이 쉽게 변하고, 사람이 모여야 교통비가 덜 들고, 사람이 모여야 지식이 모인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공간적으로 집약하고 시간적으로 집중시켜야 자본은 승리한다.

오늘날 서울의 모습은 과거 왕조제 사회의 모습을 금권적 사회의 모습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주의는 자본주의와 일정부분 상통한다.

재산과 권력을 지키려고 자본과 결탁한다. 서울의 집값은 올라야 하고 그것은 내가 서울에서 사는 대가이기 때문에 정당하다. 서울은 좁은 공간에서 비싼 물가를 견뎌내야 하는 곳이기에,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참아낸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집값으로라도 보상받아야 한다. 정의나 전통과 같은 진정한 보수주의적 가치는 돈 앞에서 물질적 가치로 변형되면서 자신의 진정성을 감춰버리고 말았다. 집값과 몸값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권력과 금력의 중심인 청와대는 서울을 떠나면 안 된다. 청와대는 집값과 몸값의 상징이 된다.

언론에서라도 `서울특별시민'이 아니라 `서울지방시민'이라고 할 수 없을까? 이미 `지방'이라는 말이 오염되었다면, 날씨처럼 `서울지역시민'이라고 말해봄은 어떤가? `높은'나를 보러 서울서 어떤 사람이 `내려오면'더 기쁘지 아니한가?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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