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新行) 가는 날
신행 (新行) 가는 날
  • 박희남 수필가
  • 승인 2019.01.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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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희남 수필가
박희남 수필가

 

그날과 닮아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게 볼을 때리고 햇살은 곱지만 왠지 하늘은 슬퍼 보였던,

30여 년 전 그날과 참 많이도 닮은 날이다. 그때는 3월 초순이었고, 지금은 1월 하순이라서 온도차이가 제법 났을 텐데 그날과 똑같이 느껴지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남편은 농사꾼에 부모를 모셔야 하는 노총각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입장에서는 반대하는 게 당연한 거였으리라. 결혼 전날에도 엄마는 음식준비 하다말고 사랑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우셨다. 그 눈물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을 뿐더러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신행을 왔다가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아침부터 말 한마디 없이 부엌으로, 뒤 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분주하게 여러 가지 음식들을 보자기에 쌌다. 엄마는 나와 눈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하셨다. 눈치가 보여서 곁눈질로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의 양 볼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엄마는 짐을 챙기는 내내 숨죽여 울고 계셨던 건지도 모른다.

엄마는 끝내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고 아버지만 한참을 따라나오시며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집에서처럼 늦잠 자면 안 된다. 시어른들 잘 공경하고 남편한테 잘해야 한다. 뭐든지 맘대로 하지 말고 어른들께 여쭤보고 해라.' 등등.

아버지의 목소리도 점점 떨리시더니 목이 메이신다. 얼른 가라고 손짓하며 돌아서는데 아버지도 울고 계셨다. 나도 이미 집에서부터 울고 나온 터라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돌아섰다.

그날 눈물에 젖은 볼이 유난히 시렸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 딸아이 신행을 보냈다. 철부지 같은 딸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 말을 잔소리로 듣는다. 이것저것 챙겨주려는 나에게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30여 년 전 우리 엄마처럼 나 또한 주섬주섬 보따리를 쌌다. 그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엄마도 지금의 내 마음과 같았으리라. 불편하다는 이유로 입지 않으려는 한복을 겨우 달래서 입히고, 나도 딸아이한테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도착하면 얌전하게 절 올리고, 조신하게 행동하고, 아침에 꼭 한방차 타서 갖다 드리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면 하루 더 자고 간다고 말씀드리고….' 못 미더워서 신신당부를 하는데 딸과 사위는 그저 웃기만 한다.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웃음으로 떠나보냈건만 보내고 들어와서 남편이 먼저 입을 연다. 결혼식 날보다도 오늘이 더 마음이 허전하고 뭔가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고. 그 말에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우리 부모님은 나 보내 놓고 밥상 앞에서 몇 달을 울었다고 한다. 그때는 그것조차도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딸아이를 시집보내 보니 이제 조금, 아주 조금 어른이 된 듯하다. 다시 마당에 나가보니 햇살도 바람도 하늘까지도 그날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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